우리 집 냉장고는 스스로 얼음을 만들지 못한다. 구매한 지 10년이 넘은 오래된 냉장고지만, 제빙 기능이 옵션에 없었던 건 아니다. 그저 필터를 갈아야 하는 것도 귀찮고, 내부 공간을 불필요하게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서 손으로 얼음을 얼릴 수 있는, 트레이가 있는 냉장고를 골랐다. 그렇게 10년 넘게 얼음을 얼리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처음엔 그리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커피머신을 사고 에스프레소를 내릴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확실한 얼죽아로 진화했다. 식사 후 디저트처럼, 외출 전 텀블러에 담을 때처럼 집에서도 늘 얼음을 찾게 되었다. 밖에서 커피를 사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지만, 얼음이 떨어지는 순간만큼은 자동 얼음 기능이 있는 냉장고가 간절해졌다.
얼음 트레이를 씻고, 다시 물을 붓고, 냉동실에 넣는 일. 이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치 하루의 빈틈을 채우는 의식처럼. “이걸 왜 아직도 손으로 하고 있지?” 하면서도 손끝으로 물의 표면을 평평하게 맞추고, 그걸 조심스레 냉동실 깊숙이 밀어 넣을 때면 묘한 만족감이 있다. 얼음이 얼어가는 동안의 시간은 느리다. 급히 식혀야 할 마음이 천천히 식는 동안, 냉동실 안에서 물은 차갑게 응고되고 그 기다림 속에서 하루가 잠시 정지한다.
가끔은 와이프가 트레이를 꺼내 얼음을 빼다가 “이거 진짜 귀찮다”고 투덜거린다. 그럴 때면 괜히 웃음이 난다. 그 말 속에는 ‘그래도 너는 그걸 계속 해왔구나’ 하는 은근한 인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얼음을 얼리는 일은 단지 습관이 아니라 우리 집의 리듬일지도 모른다. 자동으로 얼음을 만들어주는 냉장고가 생기면 편하긴 하겠지만, 대신 그 느린 리듬 하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얼음 트레이를 채워 넣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동은 편리하지만, 편리함은 언제나 관계를 빼앗는다. 얼음을 얼리는 이 사소한 손의 노동이 우리 부부의 대화와 커피 향, 그리고 하루를 조금 더 천천히 사는 방식을 남겨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트레이를 싱크대 위에 두고 물을 맞춰 붓는다. 이건 불편함이 아니라, 아직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우리 집의 온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