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선생님을 생각하며
아이가 교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할 무렵에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누구보다 일찍 도착하여 오케스트라 전체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두 손이 부들부들거리면서도 끝까지 참고 모든 연주를 영상녹화하였다. 가벼운 삼각대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행여나 화면이 흔들릴까, 좌우대칭이 깨질까 전전긍긍하며 버티어냈다. 내가 아이 연주를 보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르게 건진 영상은 아이너리하게도 앞 아이의 머리에 가려 정작 우리 아이는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
아쉬움 가득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놓았는데 의외로 많은 조회수를 찍더니 이듬해에는 오케스트라 학부모들에게서 올해도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전에 여러 번 영상편집을 해 본 적이 있기에 괜히 욕심이 나서 오케스트라 연주회 영상 외에 사전 연습부터 리허설을 거쳐 본 공연까지 찍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다. 가장 걸리는 것이 아이들의 초상권문제라고 생각이 되어서 촬영 전에 허가를 받아야 했고, 오케스트라 학부모 임원도 아니고 촬영 자격이 없는 일개(?) 학부모가 자유롭게 다니기 위해서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 촬영을 허가해 줘서 아침 일찍 학교 강당에서 준비된 리허설부터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촬영할 수 있었다. 사전공지가 안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색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잘 연주하다가도 카메라가 다가오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들, 카메라의 이동동선을 살펴보며 눈치만 보는 아이들, 오히려 카메라를 기다렸다는 듯이 멋지게 연주하는 아이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카메라를 받아들이며 익숙해졌다. 오히려 연주에 대해서 서로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모습도 담기고, 카메라에 말을 걸며 웃는 모습에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담는 다큐 감독과 같은 착각에 빠지기까지 했다.
본 연주회 영상까지 담고, 모두가 모여 오케스트라 담당 선생님의 훈화말씀까지 담고 나니 내가 생각한 모든 구성이 완벽하게 짜였다.
그날 밤 누구보다 빠르게 영상을 올리고 싶어, 밤새 편집을 하고 새벽이 오기 전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유튜브와 오케스트라 밴드에 올리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쪽지와 댓글이 한가득 했다.
대부분은 영상을 잘 찍어주고 편집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었지만, 일부 촬영의 내용을 몰랐던 학부모들은 아이 얼굴을 빼달라고 요청이 왔다. 오케스트라 운영진의 허락만 받았을 뿐 전체 학부모의 개인 동의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요청이 들어온 아이들이 나온 부분을 편집하고 걷어냈다. 전체 영상의 길이를 확보하고 걷어낸 부분에 새로운 영상을 집어넣으면서 학부모들의 요구가 점점 쪽지로 계속 날아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초상권을 이유로 걷어낸 아이들은 편했다. 아이가 혼자 걷는 모습이 찍혔는데, 아이가 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 친구들과 있는 영상을 넣어달라는 요청, 아이가 장난치는 모습만 나오는데, 진지하게 연습하는 모습을 넣어달라는 요청, 우리 아이는 두 컷밖에 안 나와서 너무 서운해하니 좀 더 넣어달라는 요청 등 수많은 요청사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나름 영상의 균형미를 맞추려고 단원들 이름 체크하고 빠진 아이들 없이 넣으려고 고민한 노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3번의 큰 수정과정을 거치고 잔잔한 다듬으로 마지막 영상을 다시 업로드하여도 요청사항은 계속 쇄도하였다. 오히려 영상이 편집될수록 다른 학부모들의 요청사항이 추가로 들어왔다. 용역업체로 오케스트라 대표와 바로 통하면 될 문제를 게시판과 쪽지로 통해 접수가 되니 모든 학부모 민원이 가감 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마지막 편집 이후 결국 영상을 내리기로 했다. 뒤늦게 초상권을 얘기하며 유튜브에서 영상을 내려달라는 요청이 와서 더 이상 온라인상에서 공유가 힘들어졌다. 개인적으로 파일을 받고 싶으신 분들께 개별 전달을 드리겠다고 알리고 모든 영상을 내렸다.
서이초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뒤늦게 생각이 났다. 일개 학부모도 잠깐의 학교행사 일에 이런 스트레스를 받았고, 책임감을 덜 했기에 결국 때려치우면 그만이었겠지만은 책임감과 사명을 안고 아이들과 1년을 같이 할 선생님은 어땠을까. 내 아이를 위한 열혈 학부모의 작은 요청도 커다란 부담이 되어 쌓여있는데 최소한의 거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특정 학부모의 갑질이 아니었다고 하여도 대부분이 열혈 학부모인 현 상황에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어느 정도 해자가 필요해 보인다.
연차 쓰고 하루종일 촬영에 달려든 나도 열혈 학부모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생각했었지만, 어쩜 나의 유별났던 행동도 몇몇 담당 선생님께는 불안요소였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