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가 던진 물음
처음 지브리를 접한 시절이 기억이 난다. 일본 문화가 전격 개방되기 전. 열화된 영상의 비디오를 돌려 돌려 지금은 모노노케히메로 알려진 ‘원령공주’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면서 새로운 작화의 충격과 상상력의 한계, 교훈을 주는 메시지에 황홀함을 느꼈었다.
지브리의 중심이 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돌아와 82세의 나이에 마지막 작품이자 회로곡이라 할 수 있는 영화를 내놓겠다고 했을 때, 수많은 지브리팬들은 감성에 다시 젖었을 것이다. 라퓨타부터 38년, 그 시절 지브리의 감성에 젖어있던 중장년에게는 기대와 정말 마지막인가? 하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을 것이다.
예고편없이, 후기나 감상평에서 철저히 격리시키고 주말 오전을 온전히 지브리에 쏟아붓고 나왔을 때, 내 머리 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확실하게 이거다’ 라는 생각이 아닌 ‘이건가?’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물어지며, 하야오의 자전적 영화라고 생각을 하면, 중의적으로 표현된 많은 배경과 인물이 서로를 투영하고 있었다.
마히토를 처음 본 순간, ‘와 이건 정말 하야오네’를 생각하며, 이 인물을 쫒아가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낸 하야오와 마히토를 너무나도 동일화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마히토의 성장에 있어 새엄마라는 존재가 나타나고, 낯선 존재에 대한 반감과 동시에 걱정을 하는 부분에서 과연 하야오에게 이런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굴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야오는 마히토가 아니라고 느끼는 장면부터 혼돈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야오의 큰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돌 속에 숨어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 와중에 수많은 죽음을 보내면서 오히려 현실을 벗어나 ‘스스로 창조주가 되어 만든 세계’로 도망치고, 그 안에서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내왔다. 그렇게 그가 만든 세계는 완벽하게 지브리의 오마주를 보여주며, 그동안 하야오가 만들어온 수많은 작품의 세계관 속 모습을 나열한다. 지브리를 사랑한다면 반가울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인사를 한다. 강인하고 강렬한 액션의 몸짓도 그대로 풍겨난다. 마치 나의 소중한 수집품을 진열하듯이 하나하나 보여준다.
수많은 오마주를 보여주고 큰할아버지와 마히토가 만나 제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죽음을 앞에 둔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무너지고 있는 블록을 다시 쌓아 세상의 균형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지브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설명하는 것 같다. 하야오는 은퇴 번복을 여러 번 했었다. 지브리의 위기가 가시화되었을 때마다 항상 구원투수처럼 돌아왔었다. 그간 지브리는 콘도 요시후미의 과로사, 스즈키 토시오의 독선적 선택, 미야자키 고로(하야오의 아들)의 실패 등을 거치면서 위기설을 자초해왔고, 이번에도 하야오의 복귀에 지브리는 다시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하야오가 바라보는 지금의 지브리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위태롭기 그지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약간의 충격에도 블록탑은 흔들거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지금까지의 지브리가 계속 흔들리는 탑이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내 탑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다 결국 세상의 붕괴가 시작되고 만다. 그렇게 그가 창조한 세상은 어느 누구에게도 넘겨지지 못하고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마히토는 히로의 도움을 받아 현실세계로 돌아오지만, 무너진 세상에 대한 어떠한 아픔, 아쉬움도 느끼기 전에 미지의 세계가 통하는 문이 닫히고, 곧바로 크레딧이 올라간다.
하야오는 정말 냉정하게 크레딧을 올리면서 지브리의 종말을 종언한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명확한 질문을 던지고 그 결말로 가는 즐거움에 신비로움을 더해줬었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하울의 움직이는 성><천공의 성 라퓨터> 등 인물과 사건, 장소를 제목에 던져놓고 환상적인 상상력으로 칠해진 작화와 스토리로 감상을 채운 후, 뒤늦게 비어져있던 궁금함이 영화관을 나와 채워지는 감동이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그의 영화가 던진 질문에는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과 행동들이 있다. 그동안 좋아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영화를 이리 보내기가 너무 아쉬운 것처럼, 일말의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으로 다양한 매력과 해석을 생각해보고 다른 이의 해석도 찾아보려 한다.
하야오는 우리 혹은 그들에게 책임감을 묻는 것 같다. 내가 만들었던 지브리라는 세계, 거기에서 너희들은 나는 것을 잊어버린 팰리컨처럼 현실에 안주하거나, 앵무새처럼 집단의식에 빠져 궐기를 일으키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 무감각한 행위에 빠져 현실을 잊어버린 그대들은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도 아직 인지를 못하고 있다라고.. 그것이 종전 후 책임감, 핵의 상대적 유용성(돌을 어떻게 쌓고 쓰느냐 등) 등 직관적인 모습들만이 아닌(물론 그의 유년시절이 너무 짙게 들어났지만) 본질적인 책임감의 여러 모습을 펠리컨과 앵무새, 큰할아버지와 마히토와 히로, 왜가리를 통해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투영시킨다.
이러한 복합성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메시지를 지브리만의 스타일로 전해오던 하야오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낯설기도 했지만, 거칠기도 했다. 게다가 친절하지도 않았다. 하야오의 마지막 흐름은 왜 그리 급했을까.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이 너희에겐 그저 메아리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치고 대화를 끊은 느낌이 든다. 단절된 대화는 마히토의 마지막 모습과 급히 올라간 크레딧처럼 아쉬움이 없어 보인다. 정작 기다리고 기다리던 관객들만 아쉬울 뿐이지..
뒤늦게 비어저있는 영화 속 궁금함이 채워져야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처럼 다소 모호한 질문의 경게에서 하야오는 관객들에게 큰 숙제를 던져줬다. 풀고 싶은 큰 숙제를 던져줬는데,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었으면 풀려고나 마음 먹었을까?
하야오의 마지막은 여전히 힘은 느껴지지만, 그건 순수하게 영화만의 힘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