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나는 독일 음대에서 졸업 연주를 했고, 지금은 중동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11년 전의 나는 독일 음대 학부 졸업 연주와 더불어 대학원 (Master) 입시도 준비하고 있었다.
6월의 독일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독일 음대에서 1시간 동안 졸업 연주를 하던 나는,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 참 초조했었다. 계속해서 음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던, 독일에 계속 머물고 싶던 그 계획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11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내 계획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잘 살고 있다.
아니, 나의 인간적인 계획이 이뤄지지 않아서 지금 더욱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도전을 즐기시는 편인가요?'
최근 새로 알게 된 사람이 나의 이력을 듣고 이렇게 질문했다. 충분히 할 법한 질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난 도전 앞에서 설렘보단 긴장을 느끼는 사람이다. 도파민 형보다는 세로토닌 형 인간이다.
10년간 예체능 전공 후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2년 동안 승무원 면접에 떨어져도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설렘보다 내가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할 때마다, 자신감이 낮아지고 회의감이 들어도'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만은 목 끝까지 차올라도 의지적으로 꾹꾹 참았다.
계획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11년 전의 계획이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11년 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을 보니, 작년동안 경험했던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털어낼 용기가 다시 생긴다.
새해 계획의 공통점은 변화다.
더 건강해지고 싶고, 새로운 직장이나 학교에 들어가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안 좋은 습관을 끊고 싶다. 근데 작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변화는 '결코 변하지 않을 좋은 것들'에서 온다.
-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우리의 새해 계획은 이뤄질 수도 있고 안 이뤄질 수도 있다. 더 나은 버전의 나로 변화하겠다는 새해 계획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은 새해 계획이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