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바르셀로나 )
중동항공사 승무원 일을 하면서 1달간 슬럼프를 세게 겪었던 적이 있다.
입사 3년 차에 접어들며 동기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니 슬럼프라기보다는 시간이 쌓이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변화인 건가 싶었다. 5년간 이 일을 해오면서 슬럼프에 계속 파묻히는 승무원들을 본 적도 있다. 다행히 난 몇 개월 만에 다시 극복할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던 경험 덕분에
슬럼프가 절정에 달한 시기에 처음 방문한 바르셀로나(Barcelona)의 FC Barcelona 전시관. 축알못이지만 전시관 안에 있는 세계적인 축구팀의 역사, 선수들의 사진을 보니 슬럼프로 지친 나로서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음대 나오지 않은 지인들은 내가 음대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클래식 음악 전공자' 하면
음악가는 매일 드레스 입고 무대에서 연주하고 박수받는 게 일상일 것 같다고 말한다. 아쉽게도 클래식 음악가의 현실은 일상의 대부분을 연습실에서 혼자 틀어박혀 몇 시간 동안 연습하며 보낸다.
-'내가 하고 싶은 곡' 보다는 '해야 하는 곡'을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내가 듣기에도 멜로디가 난해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곡을 남이 듣기 좋게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어려운 부분은 수십 번 반복하면서 될 때까지 연습한다.
-같은 부분을 몇십 번 부분 연습, 반복 연습하는 소리는 남이 듣기에도 매우 지루하다.
이랬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던 때를 생각하니 부정적인 관점을 바꾸기 수월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곡만 연주할 수만 없는 클래식 음악 전공생처럼 승무원도 내가 가고 싶은 취항지만 갈 수는 없는 거야.
-지루함을 참고 부분 연습을 하는 음악가처럼, 승무원으로서는 어렵고 헷갈리는 업무는 귀찮더라도 비행시간 외에 혼자 매뉴얼을 펼쳐보며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해.
이전에 많이 가봐서 식상함을 느끼는 취항지, 처음이라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취항지에서의 시간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이전과 다른 활동, 장소, 음식을 좀 더 시간을 들여 조사했다. 출근 전 몸이 피곤하더라도 시간을 내 매뉴얼을 다시 펼쳐보고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음대를 졸업한 나는 지금 음악가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 전공을 통해 느낀 것이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떠오르곤 한다. 그중에 하나가 ' 항상 재미있을 수만은 없는 거야.'이다.
모든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이맥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내가 선택한 일이라도 항상 재미있을 수만은 없고 때론 지루하고 힘든 시기도 있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