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전공자가 완벽주의를 벗어나는 법(feat.뒤셀도르프)
내게는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승진은 '더 높은 직급으로의 업그레이드'의 기쁨보다는 '새로운 포지션을 다시 익혀야 한다'는 부담이 몇 배 더 컸다. 하루 7시간, 9일에 걸쳐 진행되는 강도 높은 비즈니스 클래스 승무원 승진 교육과 이전보다 더 크게 주어지는 회사의 기대도 부담됐지만, 그보다 다시 신입 승무원 시절의 서툰 모습을 반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그러던 나에게 동기 한 명의 말은 용기를 주었다.
난 어차피 내가 초반에 못할 걸 아니까,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
음정, 박자, 표현력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해야 해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날 레슨해주셨던 선생님 한 분은 '악기 연주 중 실수는 스포츠에서의 반칙과 같다'라고 까지 표현하셨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내 모습을 보면, 실수에 대한 긴장으로 얼굴 표정이 많이 굳어있다.
10년 넘게 음악을 전공한 나는,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배우거나 일할 때에도 실수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남들보다 더 민감해졌다. 예체능 전공자로서 몸에 밴 완벽주의는 좀 더 정확히, 더 꼼꼼히 공부하고 준비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말 크게 반성해야 하는 실수와 하루 지나면 잊고 가볍게 넘어가야 하는 실수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운 일, 처음 하는 일을 할 때에는 누구나 실수하고, 많은 질문을 하고, 손이 많이 느리다.
힘든 과정이다.
때로는 실수를 죄처럼 느끼기도 한 나는 실수에 대한 긴장도가 동기들보다 높았다. 외항사 승무원 입사 후 6개월까지 입사 교육 강사님,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사무장/부사무장님들로부터 긴장 풀라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
동기의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라는 말의 영감을 통해, 승진 후 3번째 비행에서는 제일 어려운 업무를 도전해 봤다. 평소 내 성향과는 반대되는+ 동기들도 놀라는 과감한 시도였다.
실수 투성이고 손이 많이 느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사께서는 갓 승진한 부하 직원에 대해 인내심으로 많이 도와주고 가르쳐주셨다. 비행 후반에 '이렇게 못하고 느릴 거면 뭣하려 할 수 있겠다고 했어?라고 하시지 않았다. '오늘 많이 배웠니? 어떤 것들을 배웠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지?'라고 하셨다.
승진한 지 벌써 3년이 넘은 지금, 돌이켜보니 상사의 말씀대로 빨리 실수한 만큼 더 빨리 일을 익힐 수 있었다.
예체능 전공자, 음대 졸업생으로서 사회인이 된 건 내게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과정과 같다.
콩쿨 심사위원, 공연장의 관객 앞에서는 실수로 얼어붙고 '연습 부족'이라고 스스로를 정죄했다. 회사의 상사, 고객 앞에서는 실수에 대해 빠르게 사과하고 수습하면서 오히려 나만의 노하우를 쌓는 과정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음악가 외의 진로에도 관심을 갖는 음대생들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분야에서도 흠없이 완벽한 모습보다 실수하면서도 악기 연주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