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문화예술감수성향상 프로그램
모든 사람들이 학교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학교는 내부구성원들만의 은밀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부모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학부모들도 학교의 현실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더군요. 대학생 때 읽었던 김태길 교수의 에세이 중에 ‘사람들은 조상이 어느 벼슬을 했는가를 자랑하지만 그 벼슬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자녀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 가를 자랑하지만 그 학교에서 어떤 공부하는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렇다 하여 학교가 막장드라마가 펼쳐지는 공간이라던가, 사랑과 우애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공간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냥 학교도 사람 사는 공간의 하나이지요.
학교의 학년말 운영 현실은 외부에 알려질까 약간 두려운 느낌이 듭니다. 학년말이 되면 학생들은 시험이 끝난 해방감에 들떠있고, 선생님들도 그런 학생들을 이끌다가 지쳐서 수업을 하기 힘들어합니다. 시험 후 바로 방학을 하면 될 것 같지만, 성적 확인도 하고 생기부 점검도 해야 하니 일정 기간 수업 운영을 해야 합니다. 뭐… 대충 자습이라는 시간으로 학생들은 잠을 자든가 휴대폰을 보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하루에 세 번 학교를 꼭 돌아보곤 했습니다. 오전 중에 수업하는 모습,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하며 학교 전체를 둘러보는 거죠. 그런데 위 기간에는 수업을 둘러보기가 민망하더군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실질적인 수업을 하도록 설득하고 강압을 동원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든지.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더라도 전자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30여 년 전부터 학교는 그래왔다는 것도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대안으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하고, 선생님들께는 생기부 작성의 시간을 드리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문화예술감수성향상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화예술감수성향상프로그램은 학년말고사 이후 방학 전까지 1주일간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여 문화예술 관련 특강과 체험을 하도록 안배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문화예술감수성을 기르는 기회를 갖고, 선생님들은 생기부 작성에 집중을 합니다. 제가 매시간 한 번씩 전체 수업을 둘러보며 점검을 하여, 선생님들의 부담을 덜어드립니다(훌륭한 교장 아닌가요!ㅎㅎ). 학교장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지켜볼 기회가 있습니다. 마침 예술공동체를 이끄는 이○○님을 알게 되어, 그분에게 일종의 용역을 주었습니다. 장르와 강사 모집을 일임하고, 학교는 지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모델워킹만은 꼭 포함해 달라 요구했습니다. 학생들의 등하교 모습을 지켜보면 바른 자세로 걷는 학생이 의외로 드물다는 판단이 들어, 멋지게 걷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더군요. 아래는 프로그램 시간표입니다.
독자께서는 관련된 궁금증이 많겠지요. 비용은 어떻게 하느냐가 궁금하시죠? 첫 번째 학교에서는 행정구청에서 실시하는 교육지원사업에 신청하여 예산을 확보했습니다(제안서를 제가 직접 썼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학교에서 제안서를 제일 잘 써서요!). 두 번째 학교에서는 주말에 외부기관에 학교 대관을 해주어 사용료 수입이 발생하여 그 수입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래도 외부강사 요구를 수용하고 임시 사무실도 꾸며야 하니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지만, 대체로 제가 계획을 세운 후 업무를 조각내어 여러 사람에게 분담 부탁하여 부담을 줄여드렸습니다. 교장실에서 책상 업무만 하느니, 그냥 왔다 갔다 하며 강사들과 선생님들을 돕는 것도 괜찮습니다. 위 사진은 비보이 활동 사진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하긴 하루 종일 휴대폰만 가지고 노는 것도 지루하겠지요! 물론 일부 학생은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 생각하여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실시 전에 방송으로 10분 정도 사전교육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실시 목적, 학생들이 배우고 느꼈으면 하는 점, 외부강사에 대한 매너 등을 당부합니다. 학생들은 착하고 성장에 대한 기대가 있는 존재라서, 어느 프로그램이든 사전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래도 공부하고 싶다는 애들이 있어요. 담임선생님께 얘기하여 그 학생들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허락해 주라 합니다. 학교도 좀 쿨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많이 좋아하더군요. 틀에 박힌 학교 교육과정 활동 속에서 이 신선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감상과 고마움을 전하는 쪽지를 교장실 앞 편지함에 넣고 가는 학생도 있어요. 약간 짠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래는 이 프로그램 실시 후 실시한 선호도조사입니다. 이런 것이 꼭 필요합니다. 선호도가 낮은 장르의 강사는 다음 해에는 다른 분으로 교체하도록 요구합니다.
가끔 학교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합니다. 학생과 그 보호자인 소위 교육수요자의 바람을 구현해 주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심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가 다소 불편하지만, 큰 흐름에서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건강과 안전, 성실함, 원만한 인간관계, 학업성취 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교육수요자의 바람을 구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교육수요자가 바라는 교육의 가치와 방법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는 판단이, 학교운영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학업성취를 위해서는 약간의 강제성을 띠는 교육을 원하는 교육수요자도 많지만, 학업성취를 위해 즐겁고 편안한 학교분위기에 제한을 가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교육수요자도 꽤 있습니다. 논의를 좀 더 확대하면, 학업성취 말고도 학교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 중에는 교육수요자의 바람이 갈리는 것도 많을 겁니다.
학교는 교육수요자 외에도 교육을 주관하는 국가사회의 바람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국가사회가 학교에 바라는 것은 자유민주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경제적 번영을 이끌어 갈 올바르고 유능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사회 입장에서는 어느 학생의 성적이 뛰어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전체 학생의 학업역량이 향상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교육수요자와 국가사회가 바라는 바가 충돌하는 경우, 학교는 대체로 국가사회의 바람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개별 현상에 대하여 들여다보면 학교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그러니 학교장과 교사 집단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효과적인 교육적 성과를 구현해 내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문화예술감수성향상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목적은 앞에서 말한 애매하고 무용한 시간을 의미 있게 써보자는 것도 있지만, 인간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제 나름의 고민도 있었습니다. 학교교육에서 의도하는 바는 대부분 옳고 그름을 가려내고, 유능함을 지향하며, 원만한 인간관계의 고취 등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가치들은 대체로 사회 속의 한 개인을 상정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독립된 개인이란 것이 실존적인 존재로서는 가능하지 않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면이 매우 크지요. 돈, 명예, 권력 등의 사회적 가치가 가져다주는 행복이 매우 크지요(저는 사회적 가치의 아주 작은 조각을 맛보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달콤함이 매우 강렬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은 감동적인 드라마에 눈물을 흘리고, 성수대교 아래에서 바라보는 반사되는 석양빛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파보고, 등산길 마른 고라니를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는 그런 감정에서 느끼는 행복도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리고 조금 훈련된 경험을 쌓는다면 문화예술로부터도 감동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내가 그렇지 않다 하여 또는 다수의 학교가 그렇지 않다 하여,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키워줄 수 있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행복의 싹을 키워주지 않는 것은 무심함 또는 무능함에 대한 변명이 아닐는지요?
과학고에서의 경험이 기억나네요. 당시 한 학기에 한번 정도는 담임반 학생들을 전부 데리고 뮤지컬을 보러 다니곤 했습니다. 학부모 한분이 ‘그런 활동은 대학에 가면 여유 있게 할 텐데….’라고 조언을 하시더군요. 아마도 바쁜 학생들의 시간을 뺏는다는 걱정에 점잖게 하신 말씀이겠지요. 짐작하건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또 다른 눈앞의 경쟁으로 인해 뮤지컬을 보러 다니지 못할 겁니다. 학습에 나이와 단계가 있는 것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적절한 경험을 쌓는 것도 시기와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런 단계를 거친 모든 사람이 문화예술에서 감동과 행복을 얻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치 고등학교를 마친 모든 학생이 미적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중요한 것은, 미적분을 모르는 것은 인생에서 결격이나 인간다움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예술로부터 아무런 느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