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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형학교

14화 - 오디세이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학구적 태도를 길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이는 단순히 입시를 위한 방략을 넘어한 개인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로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솔루션을 찾으려는 의지와 태도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고등학생 때부터 한 번뿐인 인생이니 욜로족으로 살아가겠다는 삶의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그런 주장을 하는 분에게 간단한 질문을 한다면, ‘고등학생인 당신 자녀가 천방지축으로 산다면 좋겠는가?’라고 묻고 싶습니다...예스라고 답하는 분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절대다수의 부모가 바라는 바는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장이라 하더라도 선생님들의 수업에 대하여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습니다학교 수업이 학생의 학구적 태도를 육성하기 위해 잘 조직되고 운영되기를 바라지만현실적으로 그런 수업을 확립하기 위한 권한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지원·관리 방안도 학교장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제 경험으로부터의 판단입니다. ‘수업의 질이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라는 주장은 올바른 명제임은 분명하지만교육의 질을 높이는 유일한 통로가 수업의 질을 높이는 방안뿐이라는 논리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논리하에 학교장으로서 도전적이고 열의에 찬 학생들에게 좀 더 학구적인 태도를 길러주고자 하는 방안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바로 오디세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0대 중반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읽었습니다호메로스의 시에 보내는 흔한 찬사처럼 그렇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오디세우스의 귀향에서 겪는 이야기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입니다학교장으로서 바라보는 현재 학생들의 공부하는 방식이 좀 갑갑하다고 느껴지더군요학생들이 학원수강과 실수하지 않으려는 반복학습이 학습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요학생들에게 무언가 자유롭고 색다른 공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 결심을 했습니다이런 이유로 프로그램 이름을 오디세이로 정했습니다인문계열 학생들의 모임은 미네르바 오디세이’, 자연계열 학생들의 모임은 사이언스 오디세이로 정했습니다오디세이는 7명 정도를 한 팀으로 구성하고, 2주 정도 기간에 한 편의 논문을 읽고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발제를 담당하며, 점심시간에 팀원끼리 모여 발제자 주재하에 읽은 논문에 대한 토의 토론을 하는 일종의 그룹스터디입니다.  

   

교장을 역임한 두 학교 모두에서 오디세이를 운영했습니다중심 지역 학교에서 운영한 오디세이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이런 경험으로부터한번 시작한 교육불평등은 점점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어떤 주제를 정하고 어떤 논문을 읽느냐 하는 것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시행했습니다두 번째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모임 며칠 전에는 팀별 발제자를 모아 30분 정도 교육을 시켜 오디세이 활동의 내실을 높임은 물론이고교사들이 모두 나서서 출석과 운영을 체크하니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지더군요아래는 사이언스 오디세이 운영 및 점검 내역(중간)입니다표에서 불시 점검은 논문을 읽지 않고 오디세이에 참가하는 학생이 있을지 몰라 오디세이 실시일 중 하루를 택하여 불시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읽어야 했을 논문 내용에 대한 시험을 본 결과입니다지독하게 운영하지 않나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안타까운 것은 미네르바 오디세이는 개반을 겨우 운영하였습니다요즘은 고등학교에서도 인문계열이 너무 침체되어 있습니다.          

독자 중에는 고등학생이 어떤 논문을 어떤 방법으로 읽느냐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학교에는 사이언스’ 같은 학생용 과학 잡지를 정기구독합니다과학 선생님들이 이런 잡지를 보고 적절한 내용이 있으면 그 내용을 정하거나논문 검색 사이트인 디비피아에서 적절한 논문을 찾아 참여 학생들이 읽도록 합니다도서관에 복사기와 인쇄용지를 비치하여 학생들이 자유롭게 복사를 하도록 지원하고요좋은 시절이죠발제를 맡은 학생은 제시된 논문 이외에도 다른 한 편의 유사한 내용의 논문을 디비피아에서 스스로 찾아 읽어야 합니다.     


논문을 검색하고 읽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디비피아 라는 논문 검색 사이트를 유료로 가입하여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습니다디비피아 사이트를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이용하는지와 이용 빈도의 전국적인 순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여 디비피아에 연락하여 본교의 활용 실태와 활용 정도에 대한 데이터를 받아보았습니다결과 자료를 받기 전까지, 100여 명의 학생이 매달 한 편의 논문을 읽으니 활용 순위가 높을 거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전국 단위에서의 순위가 저 정도밖에 안 되다니! 표에서 보는 것처럼 오디세이를 운영하면서 디비피아 논문 검색 순위가 많이 올랐지만전국적인 기준에서는 상위 1/4 정도의 순위에 있다는 얘기죠디비피아에 전화하여 항의성 문의를 했더니특목고와 자사고 등에서는 생기부 기재 등과 관련하여 교과 교육활동과 창의적 체험활동의 일환으로 논문 읽기를 하는 학교가 많다고 하더군요여러 생각이 들더군요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중에는 디비피아 자체를 모르거나알더라도 가입해 있지 않거나가입했더라도 디비피아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학교도 많습니다오디세이 활동을 완수한 학생에게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생기부에 기재해 주었습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어떤 행위에 대하여 행정적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함이 분명합니다더군다나 부작위에 대한 책임은 함부로 물어서는 곤란하겠지요그러나 도의적 영역에서는 우리 삶의 도처에 그런 부작위에 대한 책임의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특히 어떤 직위에 있는 자로서성의를 다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을 본인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을 이유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서도의적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렇게 과한 주장일까요뭐...생각하면 어른이 되어 당당하게 하늘을 보며 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합니다.  


        

어떤 학생이 학문적 자질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동시에 학교에서 학문적 자질을 육성하는 방안에 대하여도 고민을 하지요이는 일종의 영재성에 대한 판별과 함양 방안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가끔 과학고에 근무한 제 경력과 저의 똘똘한 인상(아닌가?)으로 인해 주위 사람 중에서 자녀 교육에 대해 묻는 분을 보곤 합니다대체로 묻는 방향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하나는 자녀가 영재성이 있느냐에 대한 것이고둘은 영재고(과학고또는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이지요… 그걸 제가 우찌 알겠습니까… 그래도 문의한 분의 성의를 봐서라도 뭐라도 얘기를 해 드려야 합니다안 해주면 삐쳐요!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에는 문의한 분의 자녀에게 영재성이 있다고 말해 줍니다왜냐고요? 저는 어떤 특성이 영재성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모르고모르는 것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니 기왕이면 좋게 말해 줍니다영재반 수업도 해보고영재 선발 문제도 출제해 보고영재 선발을 총괄도 해보았지만솔직히 어떤 특성이 발현될 때 영재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확신을 못하겠더군요너무 무책임한가영재들의 올림픽이라 할만한 제도로 국제올림피아드가 있습니다수학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정보 등의 분야에서 전 세계 수재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회입니다제가 근무한 과학고는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40% 정도를(메달 수상자의 50% 정도)를 배출하는 학교입니다그런 학교에서도 가만히 살펴보면 전체의 10% 정도는 교사와 학생 모두 영재라 인정하는 학생이지만절대다수의 학생은 그저 학습 역량과 태도 및 의지가 훌륭하고무엇보다 오랫동안 꾸준히 공부를 해 온 학생들입니다영재라 인정하는 10% 정도의 학생은 같은 수학 문제를 풀어도 접근방식이나 사고의 의외성 측면에서 다른 학생들과는 차이가 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그러니 둔재인 제 나름의 판단은 학업 측면에서 높은 성취를 보이는 학생이 영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영재고 또는 좋은 대학에 가느냐에 대한 답도 뻔한 거지요그냥 열심히 하면 됩니다다만진학만이 아닌 진학 이후의 학문적 성취를 예측하는 측면에 대하여는 경험적 판단이 있습니다하나는고교 때 제 짝꿍(꼭 이 말을 하고 싶네요!)이며 물리학과 교수인 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우리 고등학교 때는 수학은 실력정석으로 영어는 종합영어를 여러 번 보며 입시를 준비했는데이 친구는 공부하는 틈틈이 과학잡지를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당장의 과제에 허덕이는 우리들과는 다르게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오늘날 학문적 성공의 표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둘은과학고 근무할 때 중간 정도의 성적을 보이던 학생이 카이스트에 진학했는데, 3학년쯤 되어 카이스트 진학한 학생들 사이에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보인다 하더군요마침 그 학생이 모교에 와서 얘기를 해보니고교 때부터 생명공학과 홈피에 들어가서 해당 분야의 소식도 보고 연결된 논문도 보았다 하더군요경쟁이 치열한 고교 시절에 그런 태도를 갖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요.    

 

오디세이에 참여한 학생 모두가 학자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내신과 수능으로 상징되는 루틴화되고 정교한 문제풀이 형태의 학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통찰을 살펴보고 친구들과 토의하는 경험은 지식기반의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기르는 경험이 된다고 믿습니다여행하면서도 휴대폰 화면에 빠져 있는 자녀에게 눈을 들어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게 하는 부모의 마음처럼교사와 학교도 눈앞의 경쟁에 빠져 좁혀져 있는 학생의 시선을 거두어 본질적인 공부를 경험해 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는지요어떤 상황에서도 흔히 말하는 될 친구는 되고 안될 친구는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그러나 그런 얘기는 양 극단에 있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지중간에 위치한 평범한 절대다수의 학생에게는적절한 경험과 안내 그리고 격려가 각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교사와 학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직업이고 기관이며가능하다면 좀 더 넓은 폭의 학생에 대하여 그런 영향을 미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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