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용틀임도전단
학교에서 추진하기 힘든 사업 중 하나가 ‘기초학력 부진학생 지도’가 아닌가 합니다. 30여 년 전에도 이런 종류의 사업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으니, 역사가 오래된 사업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움이 많은 사업입니다. 일단은 해당 학생들이 지도를 위한 수업을 받으러 오지 않아, 교사들이 학생들을 잡으러 다니느라 시간을 써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사업 예산이 내려오고 연말에 보고도 해야 하니 무엇인가를 꾸역꾸역 하기는 해야 합니다.
교감으로 부임한 학교에서도 기초학력 부진학생 지도 사업이 있더군요. 참 막막했습니다. 제가 교사일 때 수학 담당 교사로 참여했던 것처럼, 국어, 영어, 수학 교사들을 설득하여 담당 수업을 맡기고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죠. 뭔가 양심에 걸리더군요! 예전에도 젊다는 이유만으로 기초학력 부진학생 지도를 떠맡아 힘들었는데, 이제 교감이 되어 이 악역을 하게 된다는 느낌이더군요. 기초학력 부진학생 지도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담당 선생님들의 수업을 지원하고 실제 효과가 있는 지도가 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바로 「용틀임도전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용틀임도전단에서 용틀임은 용이 몸을 비틀고 승천하는 형상을 말하는 것으로, 학습부진 학생들이 도전단 활동을 통해 현재 자신의 어려움을 뚫고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작명을 해보았습니다. 용틀임을 하더냐구요? 일단 제 설명을 듣고 독자께서 판단을 해보시죠.
용틀임 도전단을 조직하면서 세 측면에서 담당 선생님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여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관련 교육용역업체를 소개받아 그 업체에서 방과 후에 사업을 한다는 분당의 ○○고등학교를 야간에 방문하여 활동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그 업체와 용역계약을 했습니다. 둘은 교과 수업을 하기 전에 스포츠활동을 배치하여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셋은 스포츠활동 후 도망가는 학생이 있을까 염려되어, 스포츠활동이 끝날 때쯤 체육관을 찾아가 학생들과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을 동행하여 교실에 집어넣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학생들의 참여도도 높고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가끔 참여 학생들을 불러 도전단 활동에 대하여 물어보곤 했는데, 학생들은 다른 것보다도 학교에서 자신들을 존중하고 다양한 배려를 하는 점을 고마워하더군요. 약간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상시에 말은 안 하지만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소외되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별 프로그램을 안배하는 학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가끔은 빵과 음료수를 사비로 사서 학생들을 격려하곤 했습니다. 사비라는 것을 밝히는 걸 보면 저도 좀 쪼잔하지요!
다행인 것은 젊은 기간제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분이 인품도 훌륭하고 배드민턴을 잘하여 그분께 스포츠활동을 맡겼더니 정말 열심히 지도해 주었습니다.
학생들끼리 리그전을 하며 랭킹도 관리하여 발표하니, 학생들도 더 분투하고 실력도 늘다 보니 도전단 활동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일단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고 활기가 있으니, 국어, 영어, 수학 수업을 담당하는 교과지도 선생님들도 즐겁게 수업을 했습니다.
교장으로 활동한 학교에서도 용틀임 도전단을 운영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기간제 선생님을 모셔와 업무 총괄과 스포츠활동을 부탁드렸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 학교장은 기간제 교사 선발에 실질적으로 간여하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심사단에 저의 솔직한 의견을 말하며 그분을 선발하도록 부탁(압력인가?)을 했습니다. 물론 저도 교감일 때와 마찬가지로 스포츠활동과 수업을 연결하는 부분은 직접 연결해 주고, 학생 격려 활동도 했습니다.
운영성과가 어땠냐고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성과 측정을 위해 두 가지 조사를 했습니다. 도전단 활동을 시작하며 정의적 영역(학교생활과 삶에 대한 만족도)에 대한 조사를 하고, 활동 종료 시에 같은 조사를 하여 비교해 보았습니다. 아래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학생의 정의적 영역에 대한 만족도가 향상되더군요(물론, 이것을 도전단 활동 때문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은 아시지요?).
인지적 영역에 대한 조사도 실시했습니다. 객관성을 위해 3월과 9월에 실시하는 전국연합학력평가 결과를 추적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인지적 영역에서는 향상되었다고 판단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통계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수학을 공부한 것을 그렇게 써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이 결과를 전체 선생님들과 공유했습니다. 이 글의 맨 마지막에 ‘용틀임도전단 운영결과 보고서‘를 첨부합니다. 이 보고서는 교육청에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자체에서 하나의 사업을 시행했으니 그 결과를 분석하고 교직원에게 알리기 위해 제가 작성한 것입니다. 이 정도 활동이면 교장도 봉급을 받을 만하지 않나요?
학교에서 교육소외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소외자는 실질적으로는 교육활동 과정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을 지칭하는 제가 만든 용어입니다. 교육소외자는 크게 세 그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그룹은 흔히 말하는 문제아 그룹입니다. 담배 피우고 싸우고 선생님께 반항하는 모습이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지요. 당연히 공부도 안 하고요. 두 번째 그룹은 학업성취가 상당히 저조한 학생 그룹입니다. 용틀임도전단은 이 그룹 학생들을 주대상으로 합니다. 세 번째 그룹은 학교에서 은둔자처럼 지내는 그룹입니다. 조용하고 다른 학생과 갈등도 없지만 무기력하고 내면적으로 갇혀서 세상으로부터 숨어 사는 학생 그룹입니다.
문제아 그룹은 아마도 학교가 시작할 때부터 존재한 학생들이 아닐까 합니다. 제도와 규율에 순치되기 힘든 기질의 학생들이며, 때로는 에너지가 넘치는 남학생들 중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사회에 나와 살펴보면, 이 그룹에 있었던 친구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친구들도 왕왕 보았습니다. 물론 더 악화된 모습으로 사는 친구들도 있지요. 이 학생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잘 유도하고 적절한 설득을 하면 멋진 학교생활로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경험을 소개하지요. 교감으로 근무할 때 북경에서 한국방문단 학생이 본교에 와서 본교 학생들과 축구시합을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축구 꽤나 하는 학생들을 모아보니 상당수가 문제아 그룹 학생이더군요. 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지금 중국과는 사드 갈등도 있고 하니, 당당하게 시합에 임해 한국인의 강인함을 가르쳐 줘라.’고 지도했더니, 미친 듯이 경기에 임하더군요. 1차 시합에서 중국 학생들에게 완패를 안겨 시합 후에는 중국 학생들이 엉엉 울게 만들더군요. 2차 시합은 출장으로 지켜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업무 지원 장학사가 중국 학생들이 안쓰러우니 2차 시합은 좀 살살해 달라고 했다더군요.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우리는 교감선생님 지도를 따르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2차 시합도 완승을 이끌어 냈답니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분명한 매력을 가진 학생들 아닙니까? 그래도 문제아들은 지도하기는 위험하고 힘들답니다!
저는 학습부진아 지도에 대하여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발생한 학습 결손은 학교에서 책임지고 보충해 주어야 하지만, 학습부진 학생 중 상당수는 근본적으로 학습능력이 낮고 학업에 대한 관심이 적은 학생이란 판단입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계속하여 학습을 강요하고 제공하기보다는 다른 방향의 관심과 진로를 안내하는 것이 교육의 성과만이 아니라 당사자의 미래와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형편이 좋은 경우에는 이런 방향의 유도를 하기가 힘들더군요. 어쨌든 학생 교육에 대한 우선적 권한은 부모에게 있으니 어찌해야 될지를 모르겠더군요.
가장 염려스러운 그룹은 은둔자 그룹입니다. 제가 이 그룹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심리검사 결과를 분석하면서입니다. 심리검사에서 특이한 반응을 보인 학생들을 모아 심리전문가를 일시 고용하여 정밀 면담과 교육을 실시해 보았습니다. 이 그룹은 교실에서 조용히 지내며 교칙도 위반하지 않아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심리전문가 활동을 살펴도 보고 그분들과 얘기를 해보니, 이 그룹 학생들은 반사회적 정서도 강하고 내면에서부터 병들어간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이 무기력한 학생들이 한 반에 2명 정도는 있는 듯했습니다. 학교장을 하면서 이런 학생들을 막연히 의식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이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학교 상담교사에게 부탁을 드리는 정도의 활동을 하고 조직을 떠났습니다.
요양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모두 근무해 본 친구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두 곳 모두 힘든 것은 비슷하지만, 요양병원은 죽어가는 노인들을 지켜보게 되니 점점 우울해지고 무기력한 기분이 드는데, 산후조리원에서는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기들을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힘도 난다 하더군요. 저도 학교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수하고 의욕적인 학생들을 지도할 때면 긴장도 되고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그래도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힘을 얻습니다. 반면 학업에 의욕이 없거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지도하려면 진이 빠지고 우울감이 깊어집니다. 아마도 인간은 자신의 노고가 가져오는 성과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학교에서 학습소외자를 교육하는 것은 아주 어렵고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성과가 없다 하여 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회피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되며, 또한 이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는 어찌 되는 것인가요? 이 문제에 대하여는 외부의 행·재정적 지원보다도 교육계 내부의 성찰과 책임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시도해 본 스포츠를 결합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등의 활동만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학습소외자 학생에 대한 애정과 관리자의 의지 그리고 지도교사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