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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22. 2024

누나의 마음

동생에게 냉이 보내기


  





지난번 글에  우리 가족은 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남편은 술을 썩 잘 마시는 체질은 아니다. 반면 나는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주량이 세다.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이유는 유전자의 힘이다. 한 마디로 말해  남편은  마누라 잘못 만나 술꾼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하 각설하고 3일 전 대낮에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 늦은 밤에 전화해서 "누나 사랑해! 알랴뷰! 매형도 사랑해요. 평생 매형한테 잘할게요."라며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 동생이 대낮에 전화를 하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 내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전화를 받으니 남동생의 껄껄 웃는 소리가 먼저 달려온다.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는 순간 동생의 헛소리가 귀속을 파고든다

"누나! 나 보고 싶었어?'

" 뭔 헛소리여?'

"근데 전화를 왜 그렇게 빨리 받아?"

'야! 이 씨, 네가 훤한 대낮에 전화할 놈이 아니잖어!"

동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송수화기를 뚫고 나와 거실에 퍼진다.

전화를 한 이유는 냉이가 먹고 싶은데 밭에 있으면 캐서 보내달라는 거였다. 나는 냉이는 이미 꽃이 피었으니 시장에서 사 먹으라고 했다.  시장의 냉이는 고향의 맛이 안 난다고 했다.


 사실 양지바른 곳에 냉이는 이미 꽃이 피었다. 집 뒤의 그늘진 곳에는 아직도 냉이가 지천이었다.

냉이는 캐는 일 보다 손질하는 일이 더 번거롭다. 나의 게으름은 해마다 꽃이 피도록 대버려 두었다. 이번엔 더 늦기 전에 손질해서 냉동실에 얼려 두려고 생각하던 차였다.


 동생에게 냉이는 캐서 보낼 테니 손질은 직접 해서 먹으라고 타협을 제시했다. 동생은 캐서 보내 주는 것도 황송한데 어찌 누님에게 손질까지 부탁하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남동생은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리다. 엄마가 그 아이를 낳던 날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내리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았으니 집안에 경사였다. 그 귀한 아들은 내 등에서 떨어질 날이 없었다. 나보다 큰 덩치를 등에 업고 품앗이 김을 매러 간 엄마에게 젖을 먹이러 다녔다. 그런 동생이 벌써 오십이 넘었다.

 

 나는 호미와 삼태기를 들고 냉이가 있는 밭으로 갔다. 냉이가 워낙 많으니 순식간에 삼태기에 채워진다. 직접 손질해서 먹으라는 말은 했지만, 아직도 내 등에 업혀 있는 것만 같은데, 엄마도 안 계신데  마음이 불편하다.

가득 채워진 삼태기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냉이를 손질한다. 흙은 털어 내고 누런 떡잎은 떼어 내서 택배용 아이스 박스에 담는다. 자잘한 것은 버리기 아까워 내가 먹을 용도로 분리한다.

(여러 번 씻어서 살짝 데쳐라. 먹기 좋게 썰어서  한번 먹을 만큼씩 소분해서 지퍼백에  담아라. 지퍼백에 담아 얼릴 때 물도 조금 넣어 얼려라. 안 그러면 냉이가 질겨진다. 택배는 내일 보내마)라고 동생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동생에게서 "누님 감사합니다. 싸랑합니다." 라고 답장이 왔다.



 동생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저녁 메뉴로 냉이 전을 맛있게 구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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