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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24. 2024

귀밝이 술은 핑계였다


 이제는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한겨울 날씨처럼 춥지 않다. 나는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몸도 풀 겸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후, 집 앞 비탈길을 걸었다. 밤마다 혼자 걷던 길에 남편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우리는 '는개비'가 내리는 밤을 걸었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일은 짧은 시간에 큰 운동효과를 가져온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많다. 횟수가 반복되면서 숨이 거칠게 차올랐다. 비가 내려 습기가 많은 날에는 호흡하기가 더 힘들다. 우리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말없이 걷는 일에만 집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잊고 있었는데 오래도록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본능적으로 살아난 걸까? "오늘 오곡밥 먹는 날인데!"라는 말이 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남편이 말을 받았다.

"그러네. 오늘은 아홉 번 나무를 하고 아홉 가지의 나물에 아홉 번 밥을 먹는 날이네. 밤에는 친구들하고 바가지를 들고 다니며 밥 얻어먹으러 다녔는데, 라며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남편의 말에 어린 시절 정월대보름을 보냈던 추억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정월 대보름 전 날, 낮에는 아홉 번 나무를 하고 아홉 가지 나물에 아홉 번 밥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왜 아홉 번인지 그 숫자의 의미는 지금도 잘 알지는 못한다. 어른들에 의해 대물림되는 풍습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을 언니들 따라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일이 재미있었을 뿐이다. 언니들이 얻은 여러 가지의 나물과 밥을 박바가지에 비벼서 김에 싸 먹었다. 그날은 김치를 먹는 게 아니라고 해서 먹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오곡밥을 얻어먹으러 다니곤 했지만 우리 집은 찰밥을 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이나 우리 형제들은 오곡밥보다 떡만둣국을 좋아했기에 우리 집은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그래서인지 결혼 후에도 나는 오곡밥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도 찰밥을 좋아하지 않아 그 핑계로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오곡밥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묵은 나물도 삶아 무치고 부럼도 준비했었다.     

 올해는 며칠째 비가 내려 보름달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포기하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정월대보름인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니 냉동실에 들어있는 나물도 그대로 있고 부럼도 준비하지 않았다. 막상 아침이 되니 대보름날의 풍습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기가 서운했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귀밝이술을 마셔야 한다는 이유로 술을 찾았다. 남편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냐며 퉁박을 주었다. 나는 나쁜 소리는 걸러내고 좋은 말만 듣기 위해서라도 귀밝이술은 마셔야 한다는 핑계를 만들었다. 아침상을 차리고 와인잔에 보리수로 담근 담금주를 따랐다. 남편 앞으로 잔을 내밀며 "앞으로 내게 좋은 말만 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삽시다."라고 외쳤다. 빈속에 30도짜리 담금주 한 모금 넘기니 보리수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며 짜릿한 전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핑계 삼아 마신 귀밝이술이 달디단 걸 보니 올 한 해도 내 귀에는 좋은 소식만 들려올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위 삽니다.
 여러분 올해 더위는 모두 제게 파세요.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삼복더위라는  이자까지 넉넉하게 보태 LTE에 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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