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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r 04. 2024

매화 향기 따라 걷는 길




올해는 봄꽃들이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음력으로는 아직 1월이건만 마당에는 벌써 운용매와 홍매화가 활짝 피어 향기를 퍼트리고 있다. 울타리에 심어진 청매화도 꽃이 피었고 그 옆에 산수유나무에도 노란 꽃들이 은하수처럼 빛을 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청에는 산청을 대표하는 3대 매화나무가 있다. 봄이 오면 매화를 보러 가야지 벼르면서도 번번이 시기를 놓쳐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봄에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꼭 산청의 3대 매화를 보기로 다짐했다.

일요일, 아침을 먹고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먼저 단성면 운리마을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단속사지로 갔다. 단속사지는 정유재란 때 전각이 불에 타서 절터의 흔적만 남아있고 석가탑처럼 생긴 두 개의 석탑만 남아있다. 그 뒤로 내가 보고 싶어 하던 정당매가 있다. 차에서 내리니 매화의 향기가 먼저 달려와 우리를 반겼다. 정당매는 고려시대의 학자 강회백이라는 사람이 공부하러 내려와 심었다고 한다. 그의 호를 따서 정당매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본 목은 죽고 뿌리에서 곁가지가 나와 630년이 지난 지금은 새끼목이 자라고 있다.

정당매는 꽃은  아주 작다. 겹꽃임에도  품격이 있다.

다음은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 한옥마을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 씨 고택부터 찾았다. 그곳에는 수령이 150년이 지난 이씨매가 있다. 하얀 꽃이 피는 이씨매는 은은한 향기와 품격 있는 모습으로 꽃이 피기 시작하면 사진작가들이 꽃을 찍으려고 모여든다. 이 씨 고택의 매화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620년 된 감나무를 보러 하씨고가를 찾았다. 감나무의 굵은 둥치는 오랜 세월을 버티느라 속은 텅텅 비었고 겉가죽만 남아서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 씨고가 정원에 700년 전에 심은 원정매는 죽고 곁가지에서 나온 후계목에서 분홍색의 꽃이 자태를 뽐내며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최씨고가의 최씨매는 150년 전에 심은 나무라는데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지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모습이 안타까웠다. 다시 건강을 찾기를 기도하며 부부회화나무를 보러 갔다.





          

 31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부부회화나무는 예담촌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다. 방송국에서 사극 드라마를 찍을 때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선비나무라고도 불리는 두 나무는 서로 마주 보고 자라면서 서로에게 빛을 잘 들게 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자라 위에서 줄기가 교차되어 자랐다. 부부가 두 손 꼭 잡고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가면 금실이 좋아지고 백년해로한다는 설이 있어 부부회화나무라 불린다. 우리 부부도 두 손 꼭 잡고 회화나무 아래를 걷고 예담촌 마을을 떠났다.

두 손 꼭 잡고 회화나무 아래를 걷고 예담촌 마을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명매가 있는 산천제로 갔다. 남명매는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남명조식 선생님이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산천제를 짓고 마당에 손수 심은 나무다. 산천제는 시천면 사리(당시 지명은 진주 덕천동) 지금은 지명에 없지만 덕산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 한때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덕산약초시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오일장이 열리면 내가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산천제에 들어서니 매화향기 가득한 마당에는 몇몇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식선생님의 정신을 닮은 산천제 건물은 아주 작고 아담했다. 조식선생님은 이곳에서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다 일생을 마감했다. 마당을 들어서서 남명매를 지나면 아주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산천제를 지키고 있다. 그 뒤로 조식선생님의 얼을 가르치는 선비 대학이 있다. 선비 대학 지붕 너머로 천왕봉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남명매를 보고 길 건너에 있는 남명기념관으로 갔다. 너른 마당으로 들어서니 젤 먼저 산수유나무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산수유나무를 지나면 남명조식 선생님의 학문과 정신을 기록해서 보관해 놓은 건물이 보인다. 건물 주변에는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들이 경쟁하듯 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매화의 향기에 취해 마당을 걷고 걸었다. 선비의 정신이 살아 있는 산청, 전통을 자랑하는 매화의 향기가 춤을 추듯 날아다니고 있는 산청, 나는 매화의 향기에 취해 산청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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