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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r 03. 2024

불은 어디서 왔을까?


 


 아침을 먹으며 남편은 차박을 떠나자고 했다. 나는 3일 전 치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고 탈이 난 이후 감기까지 찾아왔다. 속은 조금 편해졌지만 두통이 떠나지 않고 있다. 남편을 향한 서운한 마음도 풀리지 않아 만사가 귀찮다며 거실 바닥에 누웠다.

부부는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오전을 보냈다. 점심은 묵은지 헹구어 ‘쫑쫑’ 썰어 넣고 청국장을 끓여 먹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누웠다. 내 눈치만 보며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남편은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 먹자며 나갔다.

 무심한 척 누워있던 나는 남편이 나간 사이 텃밭으로 갔다. 겨울을 잘 이겨낸 쪽파가 통통하게 올라왔다. 요즘 쪽파는 맵싸한 맛보다 달달한 맛이 강하다.  지금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쪽파는 가위로 밑부분을 자르고,  상추는 비닐을 씌워 놓아 겨우내 얼지 않고 자랐다. 상추를 뜯고 그늘진 곳에 심어 놓은 부지깽이나물이 파릇파릇 올라와 한 줌 뜯어 내려왔다.

부지깽이나물은 고기와 함께 먹으면 쌉쌀하면서도 특유의 향이 나서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어 즐겨 먹는 나물이다.

  상추는 미지근한 물에 씻어 찬물에 한 번 더 헹구고 쪽파와 부지깽이나물은 데쳐서 상추와 함께 바구니에 담았다.

 모든 재료를 준비해서 쟁반에 담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남편은 어느새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며 캠핑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석쇠 위에서 자글자글 익어가는 고기의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다. 그 옆에는 남편이 먹을 돼지 목살이 얌전하게 올라 앉아있다.

 남편은 매운탕, 나는 지리탕. 남편은 김치찌개,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35년을 같이 살았지만 부부의 입맛은 닮은 듯 서로 다르다.

 상추에 고기와 부지깽이나물을 싸서 입안 가득 채웠다. 맥주 한 모금 넘기니 고소한 맛은 입안을 돌아다니고 고기는 스르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어느새 마당엔 코발트블루의 어둠이 깔리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꽃샘추위가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남편은 나무를 더 넣고 입김을 불어 불을 살렸다. 살아난 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술에 취한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불의 춤사위에 빠져들었다. 움츠러든 몸이 따뜻해졌다. 어제의 서운했던 마음도 불길 속에 녹아내렸다.

멍하니 피어오르는 불을 보고 있는데 문득 따뜻한 불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궁금해졌다. 분명 학교 다닐 때 배웠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아 남편에게 물었다.     

“불이 인간의 발명품일까?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일까?”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닐까?"

 "인간이 개발한 게 아닐까?"           

 우리는 옥신각신 하다가 큰아들에게 ‘불이 인간의 발명품일까? 자연적으로 발생한 걸까?’라고 카톡을 보냈다. 큰아들에게서는 ‘자연발생이 되는 것을 인간이 가져다 사용하는 거지요.’라는 답장이 왔다. 나는 다시 '어떻게 자연발생이 됨?'이라고 물었다.

아들은 ‘사람의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산불이 날 수 있는 행동으로 번개, 화산폭발, 암석낙화로 인한 스파크 등등으로 불이 발생한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불은 어디서 왔을까?’의 논쟁은 남편의 승리였다. 나는 ‘아빠 승!’이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 내용을 읽은 남편의 얼굴엔 ‘거봐! 내 말이 맞지?’라는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밤바람에 어울렁더울렁 춤을 추고 있는 불빛을 보며 불멍의 매력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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