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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r 02. 2024

 아프니 본전 생각이 나더라



 몇 년 동안 딱히 아픈 곳이 없어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러니 양약을 먹을 일도 없었다. 코로나 오미크론에 걸렸을 때 먹었던 약이 전부였다.


3일 전에 치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고 탈이 났다.  속이 쓰리고 신물이 넘어왔다. 평소에 양약을 먹지 않아 이상 반응을 보인건지 약이 독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자꾸 잠이 쏟아졌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고 속을 편하게 해 주려고 누룽지를 끓여 먹으며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않았다. 무차를 우려 따뜻한 물을 마시며 위장을 비웠다.  3일째 되는 날, 아침을 먹고 누웠다 일어나니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실로 나오는데 남편은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킨 체 앉아있다.
점심때가 지나고 있는데 밥솥에 밥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아내는 아픈데 밥때가 되어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남편 모습에 화가 올라왔다. 치솟는 화를 꾹꾹 누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쌀이 담긴 항아리에서 쌀을 퍼서 씻었다.  쌀 씻는 소리가 나면 남편이 들어와 자신이 씻겠다고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쌀을 밥솥에 안치고 서운한 마음을 가득 안고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남편의 눈은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다. 그 모습에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 남편을 향해  "당신은 내가 밥 안 챙겨 주면 그대로 굶을 거지?"라고 쏘아붙였다. 남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당신 안 먹을 것 같아서 라면 끓여 먹으려고 했지."라고 했다.
 남편의 어이없는 대답에 그동안 묵혀 왔던 감정들꿈틀거렸다. 쏟아내고 싶은 감정을 누르느라 명치끝에 통증이 느껴져 그대로 거실 바닥에 누웠다. 끅끅 거리며 서러움을 삼키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남편이 잠깐 나갔다 온다며 나갔다. 

도통 입 맛이 없는데 무얼 먹으면 입 맛이 돌아올까 궁리했다. 며전, 쑥국이 먹고 싶었는데 쑥이 어려 뜯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쑥이 좀 자랐을까?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바구니와 작은 칼을 챙겼다. 뒷산으로 올라가 여기저기 쑥을 찾아 돌아다녔다. 한 시간을 넘게 돌아다니며 쑥을 뜯었지만 양이 얼마되지 않았다. 강풍 주의보가 내린  날이라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장갑을 끼면 쑥이 어려서 뜯을 수가 없어  끼지 않았다. 강풍에 손은 시리고 살 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점점 심해졌다. 더 이상 쑥을 찾아 헤매는 건 무리였다. 모자라는 양은 달래로 보충하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달래 밭에 가서 달래를 캐서 주방으로 들어왔다.





 재료를 손질하기 전에  육수를 내려고 뚝배기에 물을 받고 멸치를 넣어 인덕션에 올렸다.
 쑥은 아무리 깔끔하게 뜯어도 불이 따라온다. 검불을 제거하기 위해 열 번 이상을 씻었다. 달래는 뿌리 부분을 손으로 비벼 흙을 털어내면서 씻었다. 오래 묵은 달래라 알뿌리가 마늘만큼 커서 먹기 좋게 썰었다. 멸치를 건져내고 된장을 풀었다. 그리고 쑥과 달래를 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다른 양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쑥국이 완성되는 사이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혹시나 남편 손에 먹거리가 들려 있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 빈 손이었다. 서운한 마음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우야둥 점심은 먹어야겠기에 서운함은 미루어 두고 쑥국을 퍼서 늦은 점심을

차렸다. 먹고 싶었던 쑥국을 한 숫갈 떠서 맛을 봤다. 입안에 향긋한 쑥내음이 퍼지며 잃었던 입 맛이 다시 돌았다. 밥 한 공기를 그대로 말아 맛있게 먹었다. 밥심인지 쑥의 힘인지 몸의 에너지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남편도 배가 고팠는지 밥 두 공기를 거뜬히 비웠다. 밥을 먼저 먹은 나는 맛있게 먹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마 전 생각에 자꾸 본전 생각이 났다. 남편이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먹성 좋은 사람이 입 맛이 없다며 잘 먹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뭐라도 먹게 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3일을 누워 있는데도 라면을 끓여 자기 배만 채울 생각을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너한테 이렇게 해 주었는데 너는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플 때는 예민해져 본심이 나오는 게 사람의 심리다.
서글픈 마음을 애써 눌러보지만  아프니 본전 생각이 나는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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