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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27. 2024

남편님아! 물길을 만들어 줘야지요


 집 뒤에는 산을 깎아 밭을 만들면서 직벽 절개지가 생겼다. 몇 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겨울이 되면 흙이 흘러내렸다.
이번 겨울에도 절개지의 흙은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흘러내려 산을 만들었다. 며칠 째 많은 비가 오면서  바위에서 떨어져 나오는 돌과 함께 다시 밭으로 떨어졌다.
열흘 가까이 내리던 비는 멈추고 드디어 햇살이 보였다.

 아침을 준비하는데 주방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에서 바시락바시락 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햇살을 받은 내 몸이  먼저 봄을 느끼며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봄이 달려오고 있다. 오늘은 밭 주변을 정리해야지.

 아침을 먹으며 남편에게 흙과 돌을 옮기는 밭 정리를  부탁했다.
밥을 먹고 커피까지 마신 남편은 장화를 신고 밭으로 갔다. 나도 설거지를 끝내고 밭으로
가서 보니 남편은 어느새 정리가 끝났다며 허리를 펴고 있다.
나는 남편이 흙 일을 할 때의 성향을 알기에 미심쩍은 눈으로 휘리릭 훑어봤다.
 대충 가늠해 봐도 이렇게 빨리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다. 
 역시나 남편은 쌓인 흙은 펼치고 큰 돌만 정리해 놓고 일을 끝냈다고 한 것이다. 내 맘에 찰리가 없다. 내 눈이 가자미 눈으로 변하면서 아침햇살 보다 더 강한 레이저를 뿜었다.  주특기 따발총이 기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여보! 이렇게 싸 놓기만 하면 어떡해. 비가 오면 산에서 흐르는 물이 이곳으로 떨어지는데, 그럼 흙이 밭으로 다 흘러내릴 텐데. 밭에 심은 작물을 흙이 다 덮어 버리면 헛일이잖어!"
 속사포로 쏘아대는 나의  잔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구시렁거린다.
"물 안 떨어 질건대. 이렇게 해도 괜찮지 않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입에서는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내 손은 남편이 들고 있던 쇠스랑을 낚아챘다.
"저 위에  봐봐! 물고랑이 여기를 향해 있잖아. 그럼 빗물이 여기로 떨어지지 어디로 떨어져? 비켜봐! 내가 할게!"
쇠스랑을 뺏기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준 남편의 목소리가 햇빛에 삭은 고무줄처럼 늘어진다
"아냐. 내가 할게. 그래서 물길을 만들어 주라고?"
"흙은 삼태기에 담아 흙이 없는 저쪽으로 퍼 옮기고 여기는 구덩이를 만들어야 산에서 흙이 떨어지면서 채워지지. 안 그러면 그 흙이 다 어디로 가겠어?"

 내 잔소리를 들은 건지 만 건지 아님 무시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남편은 그저   시키는 대로 말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나는 쇠스랑으로 남편이 옮겨 온 흙을 골고루 펴는 일을 했다.


 일을 끝내고 국수를 삶아 김장김치 국물에 말았다. 커피를 내려 손에 들고 마당을 서성거렸다. 오후의 햇살이 번쩍 거리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개가 있다. 그들의 배설물을 거름이 되라고 화단에 버렸다. 개똥이 얼음새 꽃을 키웠다. 개똥 먹은 얼음새꽃이 오후의 햇살을 받고 활짝 웃는다.
그 옆에 언제 깨어났는지 노루귀꽃도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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