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달집 태우기

아버지의 사랑 표현을 아버지 나이보다 더 먹은 뒤에 알았다.

by 작은거인

새벽 여섯 시 , 매일 두 시간씩 시내에서부터 마을 길을 걷고 강변 길을 달린다.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흐르는 땀이 옷을 적신다.

마을을 지나는데 남자분이 길에 떨어진 감나무 잎을 쓸어 모아 태우고 있다. 낙엽 타는 냄새가 연기 속에 묻혀서 향긋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였다. 그날은 칼바람이 불었지만 내리쬐는 햇살은 따뜻했다. 아버지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서 지게에 지고 내려왔다. 땔감을 마당 한쪽에 부려 놓으시고 나를 불렸다. 나는 쪼르르 바깥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내려오다 보니 쑥대가 많더라며 가서 베어 오라고 했다.
날도 추운데 쑥대로 뭘 하시려나 궁금하긴 했지만 베러 가기는 싫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부름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가벼운 왜낫과 새끼줄을 내 손에 쥐어 주며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가기 싫어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아버지가 알려준 곳으로 갔다. 바닥에 새끼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어설픈 낫질로 쑥대를 베어 줄 위에 모았다. 흐트러지지 않게 꼭 묶어서 머리에 이고 집으로 왔다. 쑥대를 마당에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내가 베어 온 쑥대를 가지런히 정리하더니 지푸라기 끝을 서로 연결해서 쑥대를 묶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아홉 매듭으로 묶어서 한쪽에 세워 두었다. 쑥대로 뭘 할지 궁금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물어보지 못했다.

부엌에서 엄마와 아궁이에 불을 때며 떡만둣국을 끓이고 있었다. 밖에서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아버지는 낮에 만들어 놓은 쑥대를 들고 밭에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쑥대 끝에 불을 붙였다. 내 손에 쥐어 주며 달님을 향해 위아래로 흔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가 소원을 빌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소원이 뭔지 몰랐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소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쑥대는 다 타서 불길은 아홉 번째 매듭을 지나 내 손끝 근처까지 와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타다 만 쑥대를 내려놓고 내 나이만큼 뛰어넘으며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라고 했다. 쑥스러움에 하기 싫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렴풋한 나의 어린 시절은 잔병치레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건강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게 했으리라.
그때는 지푸라기 매듭을 왜 아홉 번 묶었는지 알지 못했다. 나이 숫자만큼 묶는 이유는 그만큼의 액운을 태워 보내는 의미라는 것을 그만큼의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조금 더 커서 알았다.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였는데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당신만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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