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숲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엄마 보러 갈게요.”라며 마음속으로 애걸했다.
엄마는 신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한쪽 신장을 떼어 내는 수술을 받았다. 10년이 지나면서 건강이 회복된 줄 알았다.
그즈음 엄마와 나는 서로의 신뢰가 깨지면서 심하게 싸웠다. “다시는 전화도 연락도 하지 마!”라는 그 한마디에 엄마에게 가는 내 발걸음은 멈췄다.
암세포는 엄마를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장에 이어 췌장을 그리고 폐까지 전이 됐다고 동생들이 전했다.
하지만 난 엄마에게 가지 않았다. 궁금하고 보고 싶을 때마다 산을 찾았다. 새벽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엄마를 생각했고, 저녁산에 올라 핏빛 노을을 바라보며 섧게 울었다. 하지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던 엄마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파는 통에 갈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소리 없이 다녀와 소식을 전했지만 난 애써 외면했다.
진달래 산행을 하다가 지친 일행은 하산길에 바위 위에서 잠시 쉬었다. 먼 산의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초록의 해일에 마음을 뺏긴 나는 눈을 능선에 두고 일어나다 몸의 중심을 잃었다. 중심을 다시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눈을 뜨고 떨어지는데 바위 틈새가 보였다. 오른손으로 틈새를 잡는 순간은 살고 싶은 본능이었다. 바위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팔에 힘이 빠지면서 발끝으로 지지할 곳을 찾다가 손을 놓쳤다. 내 몸이 쿵! 하고 떨어졌다.
몸은 구르기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얼마나 굴렀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긴 어디쯤일까? 시간은 흐르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산행했던 일행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119에 헬기를 요청했지만 깊은 산속에 떨어져 착륙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에는 이미 어둠이 깊숙이 들앉았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기만 했다. 통증은 내 몸 구석구석을 들쑤시며 돌아다녔다. 피는 계속 흐르고 내 몸은 식어 갔다. 덜덜 떨리는 추위에 정신을 놓고 싶었다.
내 몸이 들것에 실리고 발아래 짓밟힌 낙엽들은 거친 비명을 질러댔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는 구급차에 실렸다. 구조대는 춘천에 있는 병원이 가까우니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구리시에 있는 한양대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엄마 만나러 가야 해요. 구리시로 가주세요. 한양대병원에 엄마가 입원해 있어요. 나 엄마 보러 가야 해요.”
밤길을 달리며 울어대는 구급차는 흐려지는 내 의식을 깨운다. 엄마를 만날 때까지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뜬다.
응급실을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바쁘다. 나를 실은 침대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누워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울고 있다. 의사들이 정신 차리라며 내 볼을 때린다.
남편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린 것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얼굴을 보려고 억지 눈을 떴지만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뿌연 안갯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나타난다. 떨리는 목소리엔 울음이 가득하다.
내 손을 잡은 엄마 눈에서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진다. 2년 만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했다.
추석에 엄마 산소에 다녀와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쓰다 덮어 버린 엄마의 글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엄마 만나러 가는 길을 쓰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그대로 덮어버린 글이었다. 더 이상 엄마를 노트북 속에 가두어 둘 수 없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엄마를 보내줘야 한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엄마를 불러 내 앞에 앉혔다. '
“ 엄마, 안녕?
그곳에서의 삶은 어때? 아버지는 만났어?
아버지가 이승에서의 그 남자라면 외면하고 다른 남자 만나라. 그곳에서는 엄마의 삶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엄마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
어쩌면 내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원망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몰라.
난 정말 엄마가 미웠어. 주위에서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 발끈했지. 하지만 난 알아. 거울 앞에 서면 그 속에 엄마가 있었거든.
엄마! 나도 이제 늙나 봐.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나고.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꿈은 뭐였을까? 결혼기념일은 언제였지? 뭘 좋아했지?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엄마의 삶을 다는 이해 못 하더라도 더는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을게.
또 보러 올게. 엄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