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빨

잊지 못할 유년시절 첫 번째 이야기

by 작은거인




글쓰기 문학회 다음 모임의 글제는 유년 시절 잊지 못할 사연, 사고에 대해 쓰는 것이다. 7남매 중 셋째였던 나의 유년 시절을 떠 올리면 풀어낼 이야기가 십 리 밖까지 줄을 세울 정도로 많다. 그 많은 사연 중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아있는 정말 아찔했던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날 4교시는 체육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냇가에 가서 물놀이를 한다고 했다. 3교시 수업이 끝나고 앞집에 사는 순자와 나는 변소부터(그때는 변소라고 불렀다) 다녀오기로 했다. 변소는 학교 건물에서 두 개의 계단을 지나 언덕에 있었다. 냇가에 가서 자맥질하며 놀 생각에 마냥 들떠 있던 우리는 변소를 향해 신나게 달렸다. 변소의 내부는 건물을 길게 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남자들이, 한쪽은 칸으로 분리되어 여자들이 사용했다. 하지만 학생 수에 비해 변소의 칸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밖에까지 늘어서 있었다. 그중엔 같은 마을에 사는 6학년 언니도 있었다. 그 언니의 코는 술을 많이 마셔 코가 빨개진 아저씨들처럼 콧등이 유난히 붉었다. 그래서 동네 언니 오빠들은 그 언니를 ‘딸기코’라고 불렀다. 순자가 먼저 언니를 보더니 “딸기코래요!”라며 놀렸다. 그 뒤를 이어 나도 언니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딸기코래요!”라고 놀렸다. 화가 난 언니는 주먹을 쥐고 우리를 향해 덤벼드는 자세를 취했다. 놀란 우리는 언니에게 잡힐세라 냅다 도망을 쳤다. 하나의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또 하나의 계단을 뛰어 내려오다 그만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고꾸라졌다. 엎어진 내 몸은 그대로 미끄럼을 타다가 계단 끝에서 멈췄다. 손바닥은 계단 시멘트를 훑으며 내려오느라 여기저기 까졌다. 깨진 무릎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얼얼해진 입에선 피 인지 침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놀라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광경은 본 친구들이 교실에 가서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선생님을 보자 놀란 마음이 놓여서였을까? 그제사 꾹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딸꾹질까지 하며 대성통곡하는 나를 선생님은 교실로 데리고 갔다. 피를 닦고 입술에 빨간약을 발라 주었다. 빨간약의 효과였을까? 놀라서 콩닥거리던 가슴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울음이 잦아드니 선생님은 나만 교실에 남겨두고 친구들을 데리고 냇가로 갔다. 난 욱신욱신 쑤시는 통증을 참으며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퉁퉁 부은 입술로 인해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고 침은 질질 흘러내렸다. 그 와중에 내 얼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교실 뒤쪽 벽에 걸려 있는 거울 앞으로 갔다. 계단 바닥에 부딪혀서 너덜너덜해진 입술은 퉁퉁 부어 있었다. 타잔이라는 드라마에서 본 밀림에 사는 아프리카인들의 입술보다 더 흉측스러웠다. 흉해진 입술을 이리저리 살피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앞니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거울 가까이에 대고 아픈 윗입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앞니 하나가 대각선으로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이빨이 입 안에 들어 있나 하고 이리저리 혀를 굴리며 찾았지만 없었다. 혹시 넘어진 곳에 가면 있을까? 이빨을 찾으러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도대체 내 앞니의 반쪽은 어디로 갔을까?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가며 순자와 함께 집으로 왔다. 퉁퉁 부은 입술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를 대신해서 순자가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는 내 입술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계집애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다 다쳤다며 퉁박을 주었다. 부러진 이빨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난 사춘기 이후, 사람들 앞에서 맘 놓고 웃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앞니를 이상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다물고 배시시 웃는 게 전부였다. 말할 때도 앞니가 보일까 봐 입을 제대로 벌리지 않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연히 야매(뒷거래, 암상의 비표준어)로 이빨을 씌우러 다니는 치기공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서 대각선으로 부러진 앞니를 뾰족하게 갈아서 가치를 씌우는 시술을 받았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차후였다. 제대로 된 모양의 앞니가 생긴다는 게 먼저였다. 비록 가치이지만 제대로 된 이빨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드디어 입을 크게 벌리고 맘껏 웃을 수 있었다.

가치로 15년을 사용하다 보니 잇몸뼈가 녹아내려 뿌리째 빠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앞니는 영원히 사라졌다. 그 자리엔 다시 임플란트 이빨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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