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 나간 두 개의 손가락

잊지 못할 유년시절 두 번째 이야기

by 작은거인




내 앞니가 사라지는 사고가 있던 그해 겨울이었다. 고향 집에는 안방에 달린 부엌과 작은방에 딸린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가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방 아궁이 앞에서 톱으로 소나무를 잘랐다. 낫으로 껍질을 벗기고 한쪽 끝을 연필 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팽이를 만들었다. 오빠는 한쪽 구석에서 칡 줄기로 팽이채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소죽을 끓이고 남은 잔불에 팽이를 굴려서 거친 표면을 태웠다. 나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옆에서 팽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크레용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크레용을 건네받은 할머니는 팽이 윗부분에 일곱 빛깔의 색을 칠해 오빠에게 건넸다. 오빠는 쭈그리고 앉아서 팽이를 땅에 놓고 두 손을 이용해 뱅그르르 돌리더니 팽이채를 휘둘렀다. 채에 두들겨 맞고 뱅글뱅글 도는 팽이에서 무지개색 꽃이 피기 시작했다. 동그랗게 꽃을 피우며 돌고 있는 팽이를 보면서 나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할머니에게 내 팽이도 만들어 달라고 떼썼다. 하지만 계집애는 팽이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는 말만 도돌이로 돌아왔다.

할머니에게서 팽이를 건네받은 오빠는 친구들에게 자랑한다며 신이 나서 집을 뛰쳐나갔다.

겨울의 늘어진 햇살이 마루 끝에 걸쳐 있는 시간이었다, 집 밖에서 오빠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내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양손을 모아쥔 손가락 사이에서는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빠는 손가락이 잘렸다는 말을 드문드문 뱉어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의 손가락이 잘렸다는 소리에 할머니는 아버지를 찾아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소문은 좁은 마을에 순식간에 퍼졌다. 어디선가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경운기를 몰고 나타났다. 할머니와 엄마, 오빠를 싣고 보건소를 향해 달렸다. 어둠이 깊어서 돌아온 오빠의 손가락엔 커다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오른쪽 손가락 검지와 중지에 손톱 절반이 잘렸다고 했다.

손가락이 잘린 상황은 이랬다. 오빠는 친구에게 가서 자신이 직접 깎은 팽이라고 자랑했다. 부러웠던 친구는 자기도 깎아달라고 했다. 거짓말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호기롭게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고 했다. 나무를 자르려고 톱으로 나무를 자르려 했지만 할머니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오빠는 잔머리도 잘 굴렸다. 궁리 끝에 여물을 써는 작두로 자르기로 했다.

후담이지만 발로 한 번만 힘차게 내리치면 단단한 소나무가 지푸라기가 잘리듯 댕강하고 잘릴 줄 알았단다.

오빠는 움직이지 않게 나무를 양손으로 잡고 작두의 칼날 아래 놓았다. 친구가 작두를 들어 발로 내리찍었다. 하지만 단단한 나무는 잘리지 않고 감싸고 있던 오른쪽 검지와 중지 손가락 반 마디가 잘렸다.


의사는 잘려 나간 손가락을 찾았다. 봉합하면 신경은 살릴 수 없지만 모양은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오빠의 친구는 어른들에게 혼나는 게 무서워 꿈틀거리는 손가락을 숲에 던져 버렸다고 했다 (잘렸으나 잠깐은 신경이 살아있었으리라.)

손가락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다친 손가락이 엄동설한에 동상에 걸리면 살이 썩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손목까지 잘라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두 개의 손가락 전체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손가락이 썩어도 내 새끼손가락이니 아비인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자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오빠의 손가락은 부작용 없이 잘 아물었다. 부모님은 잘 아문 손가락을 보며 그나마 뼈가 잘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안도했다.

성장하면서 새살이 붙은 손가락 모양은 그리 흉하지 않았다. 지금도 오빠의 오른쪽 검지 중지 손가락엔 반절의 손톱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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