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엔 이틀째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해하던 남편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다며 창고로 들어갔다. 나는 점심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놓고 남편을 부르러 갔다. 남편은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녹이 슨 칼을 손에 쥐고 있다. 그 칼은 산나물 뜯으러 다닐 때 사용한다고 오일장에서 구입한 주물로 만든 칼이다. 바구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너무 커서 방치해 두고 잊고 있었다. 그 녹슨 칼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었다. 손바닥에 아린 통증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오른손은 본능적으로 왼손바닥을 감쌌다. 내 몸은 50년도 더 지난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보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지만 우리 집은 일자형 초가집이었다. 엄마는 보따리를 쌌다. 아버지는 그 보따리와 함께 우리를 손수레에 실어 아랫마을에 사는 고모네 집에 데려다 놓았다. 다음날, 마을 아저씨들은 초가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아저씨들이 우리 집을 부순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초가집을 허물고 더 큰 집을 지을 거라며 나를 달랬다. 마당엔 굵은 통나무들이 쌓였다. 톱질을 하는 아저씨. 대패로 나무를 반듯하게 다듬는 아저씨. 반듯해진 나무에 먹물을 튕기는 아저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버지는 마당 옆 공터에 두 개의 가마솥을 걸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일꾼들 밥을 해 주었다. 동생을 업은 엄마는 허리를 구부리고 칼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 옆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살림살이는 흙바닥 곳곳에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벌겋게 녹슨 칼이 발에 차이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난 무심코 그 칼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때의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나 보다. 녹이 잔뜩 묻어 있는 칼을 보면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내 머리를 콕콕 쑤시던 그 생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칼도 지금 엄마가 파를 써는 칼처럼 잘 썰어질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 왼쪽 손을 폈다. 그리고 칼을 손바닥에 대고 스윽 그었다. 쌔에하는 짜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으앙! 울음이 터졌다. 내 울음소리에 엄마기 달려왔다. 손바닥은 어느새 붉은 피로 가득했다. 엄마는 얘가 미쳤어! 미쳤어! 하며 연신 내 등짝을 때렸다. 울음소리에 할머니가 달려왔다. 피를 닦아내더니 아버지의 담배를 뜯어 알맹이를 상처 부분에 뿌렸다. 천을 주욱 찢어 내 손을 칭칭 감았다. 담배 가루가 상처에 닿으니 통증은 더 심해졌다. 그 시절 산골엔 바르는 약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집을 짓느라 정신없이 바쁜 어른들은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손에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상처는 곪아서 진물이 났다. 어린 나는. 욱신욱신 쑤시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징징거렸다. 상처가 덧난 손바닥은 뜨겁고 통증으로 인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 상처로 인해 오랜 시간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칼을 다루는 사무라이 일본 영화를 보지 못한다. 칼로 찌르거나 주사 놓는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는다. 사인펜으로 글을 쓸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 신경이 예민해져 귀를 막는다. 주방에서 칼질을 하다 보면 가끔 그때의 기억이 떠 오른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다행이야' 라며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심하게 녹이 슨 칼에 베었다. 약도 주사도 처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파상풍에 걸리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행운의 여신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