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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r 28. 2024

너에게 반했어




 5일간 복작거리던 예치골의 손님들이 모두 떠났다.  이틀 동안 쏟아붓던 비가 그치니 따스한 봄햇살이 마당으로 쏟아진다. 나는 삽을 들고 텃밭으로 가서 흙을 깨운다. 저녁에 먹을 봄나물을 뜯는다고 산으로 돌아친다.


 쑥밥을 해서 달래장에 비벼 저녁을 먹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러 작업실로 들어갔다. 재능기부 파우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손님을 치르느라 만들지 못했다. 파우치 만드는 일은 조각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한다. 우선 필요한 수량만큼만 작업을 끝냈다.



달맞이에서 하는 일이 소문이 나면서 파우치 만드는데 보태라며 여기저기에서 원단 후원이 들어온다. 그 원단을 정리하는데 꽃무늬 원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난 그 원단에 반해 버렸다. 치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솟구쳐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각 원단을 내 몸에 대고 대충 가늠해 보니 긴치마 하나는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후원받은 원단인데 내 맘대로 사용해도 되는 건가? 잠시 양심과 욕심이 갈등을 하는 사이 내 손에는 이미 가위가 들려 있었다.

원단을 8조각으로 잘랐다. 그리고 A형으로 재단을 했다. 8조각을 다시 이어 붙이고 오버록으로 마무리했다. 주름을 잡고 허리밴드는 고무줄 밴드로 밑단은 레이스를 덧붙여 마무리했다. 입고 거울 앞에 서니 제법 잘 어울렸다.

나는 거울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속삭였다.


후원받은 원단이라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내 원단으로 대치하면 되니까 괜찮아! 난 이 치마가 정말 맘에 들어 그거면 된 거야!


 오늘은 치마와 어울릴 만한 블라우스와 조끼를 만들어야지. 그리고 봄소풍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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