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분냄새

그녀는 내집 마당에 분꽃을 심어 놓고 떠났다.

by 작은거인

한여름 태양은 떠오르기 전부터 무섭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밤새 피어있던 분꽃이 새침데기처럼 입을 오므리기 시작한다. 종일 불타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 기다렸다는 듯 분꽃이 분 냄새를 풍기며 슬며시 입을 연다. 저녁 무렵 마당을 서성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양과 분꽃은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겠구나. 그녀와 나처럼.


그녀는 예뻤다. 예쁜 그녀는 화장하는 걸 좋아했다.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그녀가 점점 예뻐졌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나를 보며 웃었다. 웃는 모습이 좋아서 옆구리를 파고드니 비릿한 분 냄새가 났다. 나도 그녀처럼 예뻐지고 싶어졌다.

그녀가 나간 사이 장롱문을 열고 화장품을 꺼냈다. 얼굴에 분칠도 하고 입술도 발랐다. 그녀처럼 루주를 손바닥 끝에 묻혀 볼에 발라보기도 했다. 거울을 보니 볼이 발그레하게 살아났다. 장롱에서 그녀가 아끼는 양단한복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걸어도 보고 빙그르르 돌기도 하며 그녀 흉내 내기에 빠져 있었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느새 손바닥이 내 등짝을 내리쳤다. 등짝이 뻐근하게 아팠지만 피하지 않았다.

아들만 편애하는 그녀가 미워서 툭하면 따지고 덤볐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주 싸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장의 빈자리를 내게서 찾으려고 했다. 어설픈 가장의 무게가 버거워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집착은 심해졌다. 그녀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결혼뿐이었다. 결국 도망치듯 결혼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그녀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혼자 있을 그녀 생각에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갔다. 그녀는 아침부터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며 괴로워했다. 응급실에 가서 참고 있던 소변부터 뺐다. 소변을 빼낸 비닐봉지 안에는 오줌인지 핏물인지 모를 시커먼 물이 가득했다.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응급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정확한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며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나온 그녀 병명은 신장암 말기였다. 수술하고 항암치료도 했지만 암 덩어리는 끈질기게 공격했다. 하지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결국 암 덩어리가 온몸으로 퍼지고 나서 자식들은 병을 알렸다. 아픈 그녀는 아들 곁에 있고 싶었지만 아들의 여자가 거부했다. 여전히 예쁜 그녀가 아픈 몸으로 내게로 왔다. 우리는 소원했던 긴 시간만큼이나 서먹한 동거를 시작했다.

더위가 깊어가던 여름날, 그녀는 밥을 먹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분꽃을 심고 싶은데 너무 늦었나?”

“분꽃?” 되묻는 나를 바라보며 수저를 든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이었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유일하게 누룽지만 넘길 수 있는 그녀를 위해 주방에서 누룽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득득’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동하겠다며 나간 그녀가 살이 빠져 헐렁해진 엉덩이를 치켜들고 호미로 땅을 파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그녀가 심고 있던 것은 분꽃이었다. 운동하다 길가에 있기에 뽑아왔다며 묻지도 않은 대답을 늘어놓았다. 분꽃을 심고 싶다던 말을 기억했기에 남의 집 화단에서 뽑아왔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말없이 물을 받아 흠뻑 주었다.

며칠 후, 그녀가 분꽃 옆에 비료 한 줌 뿌려 놓았다. 비료를 먹은 분꽃은 쑥쑥 자랐다. 하지만 병은 점점 더 깊어갔다. 괄약근이 약해져 똥인지 오줌인지 분간할 수 없는 누런 분비물이 끝없이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분비물을 닦아내는 것뿐이었다. ‘내가 어쩌다 너한테 와서 이런 꼴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이는 그녀를 애써 외면했다. 점점 더해가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이 사는 인천으로 가겠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면 좋아질 거라 믿는 눈치였다. 나 또한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워 구급차를 불러 인천으로 내달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미리 연락을 받은 두 아들이 병실을 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를 담당했던 의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의사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간절했다. 하지만 의사는 차가웠다. 병원에 왔으니 살 수 있을 거라 믿는 그녀에게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잔인한 짓이었다. 일곱 자식들 모두 못하겠다며 내게 떠밀었다. 결국 죽음을 알리는 것도 내 몫이 되었다. 병실로 들어가니 멀뚱멀뚱 천장을 올려다보며 손가락 끝을 물어뜯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뻐근한 통증을 누르며 가만히 그녀를 불렀다.

“엄마!”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내게 눈을 돌렸다. 차마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엄마한테 할 말이 있는데….”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

“있잖아, 의사가 그러는데 우리는 이제 이별해야 한대.’

그녀가 되물었다.

“내가 죽는다고?”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보던 그녀는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던 그녀는 병원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눈을 감았다.

화장을 좋아하던 그녀 얼굴에 자식들이 마지막 화장을 해주었다. 꽃상여에 태워서 남편 옆에 나란히 묻어주며 울지 않았다. 그녀를 묻고 집에 오니 마당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익숙한 냄새가 났다. 냄새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그녀가 심어 놓은 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분꽃 냄새를 느끼는 순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해 가을에 그녀가 좋아하던 예치골에 작은 집을 지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예쁜 집에서 그녀가 심어 놓은 분꽃과 함께 살고 있다. 뜨겁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 그녀의 분꽃이 피어난다. 가만히 분꽃 옆에 앉아서 그녀를 느낀다. 비릿한 그녀의 분냄새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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