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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Aug 24. 2024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봉숭아줄기에 맺힌 씨방이 아가리가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고 있다. 채송화는 뜨거운 여름을 버티느라 지쳤는지 가늘어진 허리를 잔뜩 수그리고 있다. 어느새 부추꽃이 하얗게 피었다.
마당에 초록 밤송이 하나가 떨어졌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것을 보니 제법 여물었겠다.
털신을 신은 발로 툭툭 건드려 배꼽을 찾았다.
밭 끝에 힘을 주어 배꼽 부분을 밀어 내니 저항도 하지 못하고 툭 갈라졌다. 갈라진 밤송이 안에는 아직 여물지 않은 풋밤이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한번 더 발끝에 힘을 주고 허리를 구부려 손으로 풋밤을 뺐다. 앗 따가! 방송이는 여름 내내 잉태하고 있던 자신의 새끼를 지키려는 듯 저항했다.
마당에 선 배롱나무는 꽃을 미처 다 떨구지도 못했는데 숲 속 단풍나무에 물이 들기 시작했다.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 여름이 떠나면 후다닥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들이닥칠 텐데,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멈추더니 풀벌레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여름을 보낼 준비를 못했는데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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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지리산을 오르며 숲 길 걷기를 좋아하는 작은거인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일기처럼 기록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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