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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Oct 16. 2024

가을, 참 달다

 바느질하는 뱀띠 여자들이 충주로 가을 여행을 떠났다. 뱀띠 여자들의 인연은 취미로 옷을 만들며 소통하는 밴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곳에 가입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따로 65년생 또래밴드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만났지만 취미가 같고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다가갈 수 있어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었다. 1년, 2년 온라인 소통만 하던 우리는 오프라인으로 나오기로 했다.


 지난해 봄에 우리 집에서 첫 만남을 시작으로 홍천에서 순천에서 만났다.

전국에 사는 친구들은 밤잠을 설치며 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충주에서 모여 네 번째 모임을 가졌다. 탄금호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첫날 아침의 충주는 물의 도시답게 안개에 묻혀 제 모습을 숨기고 있다. 탄금호 주변에는 호수를 둘레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와 안개에 싸인 산책로를 오래도록 걸었다. 몇 번 만났을 뿐인데도 매일 만나는 친구처럼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다. 걷는 내내 머리카락에 모인 물방울이 또르르 얼굴로 떨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햇살이 쪼개 놓은 안개를 바람이 데리고 사라지니 탄금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사라진 탄금호에는 햇살을 받은 윤슬이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빛났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우리는 바느질 모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꽃밭으로 갔다. 꽃길을 걷는 친구들의 자태는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꽃밭에서도 당당하게 빛났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은 친구들 웃음소리에 놀라 더 파랗게 변했다.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수다에 노을이 구경 나왔다. 지치지 않는 웃음소리가 밤이 깊도록 충주를 뒤흔들었다. 탄금호의 잔잔했던 물결이 출렁거리고 나무들이 춤을 추었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웃고 즐기고 싶었지만, 일정 때문에 먼저 떠나는 친구들을 위해 우리는 얼굴이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쇼! 조심히 가십쇼!" 내년 봄에 또 만납시다!

 1박 2일 행복하게 웃고, 열심히 먹고, 신나게 놀았다.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던 친구들은 헤어질 때도 그렇게 떠났다.


  2박을 하는 친구들 몇 명은 충주로 귀촌해서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의 텃밭은 정갈하면서 풍성했다. 밭에는 고추며 호박. 가지가 가을 햇살 아래 살을 찌우고 있었다.      필요한 만큼 따가라는 친구의 말에 우리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호박 넝쿨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설익은 호박 두 개를 땄다. 찬 바람을 맞으며 자란 가을호박은 여름호박보다 단맛이 강하다.  껍질이 두꺼워 식감은 거칠어도 풋호박보다 깊은 맛이 난다.     





  슬금슬금 어둠이 기어드는 마당에 자박자박 가을비가 내렸다. 충주에서 따 온 호박으로 얼큰하게 찌개를 끓였다. 쌀뜨물을 받아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김장용 무를 하나 뽑아 두툼하게 썰고 호박은 반으로 갈라 속을 긁어내고 무와 같은 크기로 썰었다. 고춧가루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며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무에서 나오는 시원한 맛과 호박에서 우러난 단맛이 사이좋게 어울렸다. 칼칼하면서도 달큼한 국물을 맛본 남편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다시 냄비로 가져갔다.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데 귓가에서 친구들의 안전을 기도하는 마음의 소리가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운전이 서툰 나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혼자 운전해서 충주까지 먼 길을 다녀왔다. 초행길이라 긴장했지만 그만큼 여행의 맛은 달았다.

 유독 맵고 뜨거웠던 여름은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처럼 더웠다. 전국에서 힘들게 모인 친구들이 주는 행복의 맛처럼 여름을 힘겹게 밀어낸 가을, 너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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