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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y 15. 2024

지리산, 세석을 오르다



 지리산의 정기를 품에 안고 싶다. 올해 경방기간이 풀린 후, 아직 지리산에 들지 못했다. 마음은 늘 지리산 속에  두고 있지만 현실을 사느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세석을 오르는 길, 촛대봉에서 바라보는 연화선경길이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내 발목을 잡는 모든 일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오늘은 기필코 지리산으로 갈 거야!
도시락을 싸기 위해 서둘러 감자를 찌고 계란을 삶았다. 밥을 싸고 열무김치를 쌌다. 커피를 내려  배낭을 꾸렸다. 아침 먹는 것도 잊은 채 거림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마을 대청소 날이라고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란다. 등산로 입구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했다.




등산로로 입구로 가는 길이  너무 멀다. 이러다간 지리산에 들기 전에 지칠 것 같았다.



헉헉 숨을 몰아 쉬며 입구에 섰다. 세석으로 가는 길 초입에 서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스트레칭으로 다리를 풀어 주고 심호흡을 하고 등산로로 들어섰다. 우거진 상록수 잎들이 그늘을 만들었다. 나뭇잎들이 내내 뿜는 공기는 상쾌하고 향기롭다.

서두르지 않으리라. 그리고 쉬지 않고 걸으리라. 산행을 시작하고 두 시간 만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쉼을 한다. 손을 얼굴로 가져가 턱으로 모여드는 땀을 쓱 훑어낸다. 산아래에서 바람이 습을 머금고 흐르는 물소리를 데리고 온다. 산 중턱에 서서 고스란히 숲을 느낀다.
세석 정상에는 커다란 습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가물어도 계곡의 물은 언제나 힘차게 흘러내린다.


 산행 시작 후, 세 시간 만에 도착한 세석평전을 지나고 습지에 도착했다.
습지에는 동이나물꽃과 왜갓냉이꽃이 경쟁을 하듯 피어 있다. 그 옆에서 박새가 자랑하듯 커다란 잎을 펼치고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세석의 습지다.
 
 습지를 지나 내가 좋아하는 촛대봉에 도착해서 사방을 조망한다. 천왕봉 쪽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다닌다.

반대로 영신봉을 지나 벽소령 능선 쪽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길게 이어진 연화선경길 끝에 천왕봉이 보인다. 나는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리며 지리산을 느낀다.
연화선경길을 지나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숨 가쁘게 오르면 제석능선길이 이어진다. 시나브로 눈앞에 펼쳐지는 길이다. 걸어서 천왕봉으로 가고 싶지만 마음을 비우기로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촛대봉까지다.  점심을 먹으려고 세석 대피소로 내려오다 진달래 꽃몽오리를 만났다.
 세석의 진달래는 이미 다 졌건만 미처 피지 못한 꽃몽오리가 수줍은 듯 입을 오므리고 있다.  세석의 진달래는 이미 다 지고 흔적도 없는데 어찌 혼자 꽃을 피우려는지.

나를 닮은 아주 게으른 진달래꽃이다. 나는 지리산에서 게으르게, 또 느리게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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