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낭도항에서 일박을 하고 어묵탕을 끓여 아침을 먹고 둘레길을 돌기 위해 출발했다. 차로 이동하다 걷기 좋은 길은 걸으며 낭도를 한 바퀴 돌았다.
남편이 자연산 회가 먹고 싶다고 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낭도엔 회를 떠 주는 곳이 없었다. 우리는 회를 뜨기 위해 고흥에 있는 수산회센터로 갔다. 어떤 생선으로 회를 뜰까? 고민하던 남편은 내게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다. 나는 농어를 선택했다.
다시 낭도로 들어갈 계획을 바꿔 근처에 있는 대전해수욕장으로 갔다. 소나무 숲이 조성된 해변가에는 차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지만,비수기의 해수욕장은 조용했다. 우리도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자리를 만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술 중에 최고의 술은 낮술이지. 술시가 따로 있나? 우리가 마시면 그때가 술시지 라며 너스레를 떤다. 역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달큼한 회와 낮술은 술술 녹아드는 꿀맛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회접시는 비워지고 빈 맥주캔과 빈 소주병만 남았다.
술에 취한 남편은 잠이 들었다. 나는 맨발로 휘청휘청 모래 해변을 걸었다. 해는 뉘엿뉘엿 수평선 너머로 가 버리고 바닷가에는 어둠이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저녁을 먹으려고준비해 간 무와 감자. 양파만 넣고 매운탕을 끓였다. 생선이 싱싱해서 그런가? 별다른 양념 없이도 매운탕은 달고 시원했다. 또 시작된 술자리에서 밤이 깊도록 많은 대화를 했고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그리고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차 지붕을 뚫을 기세로 두들겨 패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장맛비처럼 내리는 기세 좋은 비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비로 인해 아침을 해 먹을 수가 없다. 남편은 나가서 사 먹자고 했지만 시골엔 아침식사를 파는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목적지를 팔영산 아래 능가사로 정하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샀다. 능가사 주차장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능가사를 걸어야 하는데 차에는 우산이 한 개 밖에 없었다. 폭우로 인해 우산 하나로 둘이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남편은 차에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우산을 쓰고 절 안으로 들어갔다. 능가사는 생각보다 아주 작은 절이었다. 이른 아침의 능가사는 빗소리만 요란했다.
능가사를 걷고 해양심층수로 만들었다는 젖샘 막걸리를 사기 위해 다시 낭도로 들어갔다. 막걸리를 사서 목적지 없이 또 달렸다.
달리다가 눈에 들어온 이정표는 백야도! 백야도는 워낙 많은 양의 비로 인해 걷지 못하고 차로 한 바퀴 돌았다. 여수 근처에 많은 섬들은 대부분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이틀 동안 10개 이상의 다리를 지나다닌 것 같다. 다리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른 여행에서 느끼지 못한 이번 여행의 재미였다.
멈출 기세 없이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짐정리를 하고 나는 부추를 자르고 상추를 뜯어 지짐이를 구웠다. 지짐이를 젓가락으로 쭈우욱 찢어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상추 전의 맛이 별미다. 젖샘 막걸리를 들이켰다.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맛은 어린 시절 아버지 심부름을 하며 맛보던 그 막걸리 맛이다.
나는 앞산에서 놀고 있는 운무를 바라보며 '여기저기 다녀 봐도 우리 집 앞산 풍경이 최고다.'라고 했더니 남편이 인정의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여행길에서 유난히 눈이나 비를 자주 만났다. 이번 여행에서 또 비를 만났다.
나는'비가 와도 좋다. 또 떠나자!'라며 막걸리 잔을 부딪혔다. 비님이 만들어 낸 앞산의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며 우중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