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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남편이 만든 건데?

by 작은거인


도시에 살면서 일에 쫓겨 동동거리며 살던 나는 귀촌생활을 하며 남편에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나는 땅 일구고 흙 만지며 살 거니까 돈은 당신 혼자 벌어!"

그 이후 10년 넘게 노는 여자로 살았다. 물론 간간히 일당벌이를 해서 내 용돈 정도는 벌어서 썼다.


이번에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연수원에 교육생이 많이 왔다고 해서 이틀간 설거지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침밥을 먹으며 남편은 "당신 출근하고 나면 나 혼자 뭐 하지?" 혼잣말을 한다.
밖에서 일을 하는 남편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주방에 나무상자를 만들어 달라고 기회를 엿보던 중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마당에 있는 화분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베란다나 온실이 없어 빈 공간공간마다 화분이 차지했다.
주방 창가에도 사용하지 않던 나무상자를 올려서 다육이 화분을 놓았다.
그러다가 나무상자에 못을 박아 물이 잘 빠지도록 수세미 걸이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의 일이 한가해지기만을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던 터였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남편을 주방으로 불러 입으로 손으로 디자인을 그렸다.

머신이 들어오면서 몇 년 전에 만들어 준 드립커피 거치대도 화분대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재봉틀이 있던 곳에도 소엽란이 자리 잡았다. 재봉틀은 다락 구석으로 옮겨지는 신세가 되었다. 재봉틀을 얹어 놓을 수납장이 필요했다.

"여보! 기계 꺼내는 김에 다락문 앞에 하나 더!"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주방에서 나를 불렀다.
주방창가에는 새로운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다.

"어때? 잘 만들었지, 맘에 들어?" 내게 묻는 남편 목소리에 힘이 들어 있다. 내 표정을 살피며 싱글거리는 의기양양하는 남편의 모습이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귀엽다.
나는 나무상자를 요리조리 살피며
"그럼! 누구 남편이 만들었는데, " 하며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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