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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잡는 날

by 작은거인




일부다처제를 고집하는 닭의 세상에서는 수탉 한 마리에 암탉 10ㅡ15마리 정도가 적당한 조합이라고 한다.
귀촌해서 집을 지은 이후 우리는 주욱 닭을 키웠다. 처음에는 암탉만 사서 키우다 남편이 부화기를 만들어 알을 부화시켜 키웠다.
그러다 보니 암탉과 수탉의 비율이 맞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지인의 부탁으로 20 마리를 부화시켰는데 산짐승이 지인의 닭장을 부수고 닭을 다 잡아먹는 바람에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중에 수탉이 10 마리가 넘었다.

원래도 수탉의 수가 많았는데 더해서 더 해진 수탉들은 시시때때로 깃털을 세우고 쌈질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세등등하던 붉은 벼슬에는 핏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더해서 암탉들도 이놈 저놈에게 당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홀딱 벗은 닭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몇 년 전 sns에서 본 동영상이 생각났다. 암탉 한 마리와 수탉 수십 마리를 한 우리에 가두었다. 다음날 암탉은 죽어있었다. 그 영상을 보고 사람들의 잔인함에 나는 분개했었다.

그때 본 영상이 떠 올라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안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가슴이 쓰렸다.

남편에게 닭을 잡자고 사정하지만 살생은 싫다고 차일피일 미뤘다.
감정으로 호소했지만 겨울에 잡을게. 한가해지면 등등 핑계대기에 바빴다.
계속되는 나의 닦달에 벼랑 끝에 선 남편은 결국 닭을 잡기로 했다. 거사를 치르기 위해 닭들이 잠들어 꼼짝 못 하는 시간인 밤을 택했다. 플래시를 들고 닭장에 들어가니 횟대에 올라앉아 잠들어 있었다. 그중에 수탉들만 골라 잡아 자루에 담았다.
다음날 남편은 시내에 있는 닭도축장에 가서 손질해 왔다. 총 16마리를 잡았다.

절반은 지인에게 나눔 하고 절반은 닭곰탕을 끓이기로 했다.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담가 두고 커다란 솥에 약초를 넣고 불을 땠다. 노계이고 풀어 키운 닭이라 살이 질기다. 첫날은 4시간 이상 삶았다. 하룻밤 뜸을 들인 후 또 2시간 불을 땠다.
양계장에서 살만 키운 닭이 아니라 그런지 국물은 뽀얗게 우러나고 기름기는 전혀 없다. 그렇게 오래 삶았건만 고기의 결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일일이 뼈와 살을 분리하고 국물은 식혀서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저녁은 시래기밥에 꼬막을 넣고 비벼 잘 우러난 닭곰탕을 곁들였다. 몸이 저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자신이 잡아 끓인 닭곰탕은 먹지 않겠다던 남편은 국물이 담백하다며 맛있게 먹는다.

나는 살생은 싫지만 맛은 좋다는 남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여보! 여름에 한 번 더 잡자."
남편은 닭곰탕 그릇에 머리를 숙이고 고개를 좌. 우로 절레절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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