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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 법

by 작은거인

운동을 하고 욕실에 들어가 땀을 씻었다. 수건을 꺼내려고 수납장을 열었다. 그런데 수건은 수납장 맨 윗 칸에만 책을 꽂아 놓은 듯 나란히 모여 있었다. 깨끼발을 하고 손을 뻗어 보지만 닿지 않았다.
결국 변기 위에 올라가서 꺼냈다.
물기를 닦고 나오니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남편 앞으로 바싹 다가앉아 내 얼굴을 남편 턱 밑으로 들이댔다.
나의 행동에 당황한 남편이 놀란 토끼 눈을 만들며 내려다보았다.
"여보!"
"왜?"
"당신은 키가 크지? 나는 작지?"
이 여자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내 말을 받는다.
"응. 그래서?"
"그럼 당신은 욕실 수납장에 어디 있는 수건을 사용해야 하는 거야?"
남편은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알았어. 미안해. 내가 거기까지는 진짜 생각 못했어."
나는 주먹을 쥐고 남편 턱 밑에 들이대며
"확 씨! 앞으로 아랫칸에 있는 수건은 손대지 마세요!"
으름장을 놓으며 빙글빙글 웃는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다.


우리는 40년 지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삐그덕 거리며 서로를 맞춰가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는 세월이 와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삐그덕 거리며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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