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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의 상처는 언제쯤 아물까?

by 작은거인



전날 내린 비로 대지의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 상쾌한 일요일이다.
잔불 진화를 하기 위해 매일 들려오던 헬리콥터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텃밭에 풀들이 극성이다. 냉이도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고 하얀 민들레도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있다. 오전 내내 동동거리며 풀작업을 하고 열무 씨앗을 뿌렸다.

점심을 먹고 남편과 나는 벚꽃놀이에 나섰다. 시내로 나가는 길도 벚꽃길로 이어졌지만 화마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지나다닐 때마다 마음이 쓰렸다.


우리는 시내로 가는 길을 피해 청학동에서 하동호까지 어어진 벚꽃길을 달렸다. 이 길은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조용히 꽃을 감상하기에도 좋아 선택했다. 지리산 둘레길인 하동호를 지나고 궁항마을로 들어섰다. 궁항마을을 지나니 옥종면이 나타났다.
옥종면에도 이번 산불을 피해 가지 못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개울을 건너간 불이 순식간에 번져 대응이 어려워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숲의 군데군데 불길이 지난 자리에 소나무 잎이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린 거처럼 산 여기저기 누런 얼룩들이 보였다.
옥종면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올라서서 야산을 지나면 산불이 극성을 부리던 시천면 내공마을이 나온다. 옥종면과 이어진 산아래 마을이다.
마을 건너에 구곡산에서 발생한 불은 강을 건너 이 마을까지 내려와 꺼지지 않아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마을 언덕에 오르니 구곡산의 모습이 보인다.
구곡산에는 일몰 시 햇살이 억새에 비추는 모습이 황금색이라 하여 불여진 황금능선이 있다. 열흘 내내 불에 탄 산이 시커먼 숲으로 변했다. 불은 그 능선을 지나고 지리산으로 향하고 산 너머 마을로 내려가다 꺼졌다.
숲마다 유록색의 싹이 돋아나고 있는 지금이다. 하지만 화마가 휩쓸고 간 구곡산은 온통 시커멓다.


구곡산과 마주하고 있는 강 건너의 산도 마찬가지다. 저 산을 넘으면 하동군 옥종면이다.

최초 불이 났던 사슴농장까지 가보았다. 사슴목장이 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목장은 그 거센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고 살아있었다.

건너 마을 지인은 내 집이 탄다며 경찰의 만류에도 집으로 달려가 불을 끄고 뛰쳐나왔다.

감사하게도 화마는 내가 사는 마을은 비껴갔다. 하지만 앞 산에서 열흘 내내 꺼지지 않고 타기만 하는 불길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숲의 처참한 모습에 가슴만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화마에 덴 상처는 언제쯤 아물어 새살이 돋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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