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 삼장면에 있는 대원사 둘레길을 걷다 보면 바위틈에 앙증맞게 핀 각시붓꽃을 볼 수 있다.
처음 만날 때는 딱 한송이가 피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 이후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그곳으로 각시붓꽃을 만나러 간다.
한 송이 피었던 꽃은 척박한 바위틈에서 죽지 않고 해가 거듭될수록 개체수를 늘리고 있다.
숲에 가서 각시붓꽃을 만나야지.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아침을 먹어야지.
새벽부터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고 오메기떡을 데워 가방에 담았다.
차로 20여분을 달려 도착해서 둘레길을 걸으려니 입구에는 '산불 방지를 위해 출입을 금합니다. 위반시 과태료 부과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불은 사람들이 사는 집 근처에서 나고 있다. 낙엽을 태우고 논두렁을 태우고 담뱃불을 던지는 인간들의 무책임한 행동에서 발생하는 인재이거늘 이렇게 막아 놓으면 무엇하나. 해마다 만나던 바위틈에 핀 각시붓꽃을 볼 수 없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굳게 닫힌 빗장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갈 수 없어 차도를 걸었다. 차도 아래 계곡 물은 조개골에서 세재로 그리고 덕천강으로 힘차게 흐르고 있다. 계곡으로 내려가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따끈따끈한 떡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건너의 숲을 바라보았다.
무질서한 듯 하지만 제자리에 놓여 있는 돌과 돌을 건너면 각시붓꽃을 만날 수 있는데, 만날 수 있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유혹한다.
유혹에 휘둘리는 마음을 달래려고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했다.
산 능선에서 떠 오르는 아침햇살이 계곡을 건너 유록의 색이 번지고 있는 숲에 닿았다. 이제 막 잎을 틔우기 시작한 초록들은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을 낸다.
계곡을 올라와 유평마을을 향해 걸었다. 유평마을에는 오래전에 폐교된 가랑잎초등학교가 있다.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계곡 건너의 숲에서 골바람이 불어왔다. 운동장 주변에 울타리처럼 서 있는 벚나무에서 꽃비가 나풀나풀 원을 그리며 떨어진다.
한때는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가득했을 가랑잎 초등학교는 빈 건물만 썰렁하게 남아있다. 아이들은 사라졌지만 나무는 몸짓을 키우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듯 초록을 틔우며 꽃을 피우고 있다.
오던 길을 다시 걸으며 내 눈은 또 각시붓꽃이 피어 있을 계곡 너머 숲으로 간다.
"너를 보러 다시 올게. 그때까지 지지 말고 피어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