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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좀 예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by 작은거인

귀촌 후, 나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 땅을 일구고 흙을 만지며 살다가 12년 만에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두 군데에 면접을 보고 비교적으로 시간의 여유가 많은 직장을 선택했다. 그 일이 구내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첫 출근,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잔뜩 긴장을 하고 출근했다.
영양사 1명에 조리원은 나를 포함해 4명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데 일에 익숙한 선배들은 본인들이 담당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도 첫날에 하는 일은 서툴기 마련이다. 하물며 처음해 보는 사람은 어떻게는가?
잔뜩 긴장을 하고 이것저것 시키는 일을 했다. 요령이 없으니 마음은 바쁘고 손은 연신 허우적 거린다.
그러니 진행상황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2인 1조로 하는데 선배의 말투가 상당히 불친절했다. 말투야 사람마다 다르니 그 사람의 버릇이겠지. 곧 익숙해지겠지 자신을 달래며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식판 하나가 내 앞에 떨어진다. 선배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던진 것이다. 아무리 일이 서툴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앞에 물건을 집어 던질수가 있을까?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화가 활화산처럼 치밀어 오른다,
내 앞에 떨어진 식판을 쳐다보며 첫날이니까 적응할 때까지 참아? 지금 참는 다면 계속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할 텐데 받아?' 갈등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분노는 치밀었지만 숨을 몰아쉬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언니! 말씀 좀 예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잘하라고!"
"처음부터 일 잘하는 사람이 어딧어요?"
나는 재차 맞받아 쳤다. 선배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나를 위, 아래로 훑더니 "이 씨!" 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생각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로 일을 해야 한다면? 아니야, 그래도 내가 누구냐? 이런 경우보다 더 한 것도 이 악물고 버텨낸 나 아니냐!'
한 시간여 일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다른 선배가 와서 같이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밥을 먹으라고 불렀다.
땀에 젖은 몸으로 직원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가니 그 선배가 나와 눈을 맞추며 웃는다. 나도 어설픈 웃음으로 대응했다.
점심을 먹고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선배는 신입이 말 좀 이쁘게 하라며 악다구니를 쓰더라고 흥분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 상황의 내 행동이 이렇게 버릇없는 행동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선배의 말에 나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같이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화를 꾸역꾸역 누르며 얼굴에는 찡그린 미소를 만들었다.
"언니! 제가 언제 악다구니를 썼어요. 말씀좀 이쁘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했지요. 언니가 먼저 식판을 제 앞에 던지면서 봐! 봐! 하면서 소리질렀잖아요."
내 말을 들은 선배의 말투가 조금 누그려졌다.
"앞으로도 바쁠 때는 말도 막 나가고 그럴 수도 있는 기라. 그거는 이해해야 한데이."
"네, 네, 그거야 당연히 알죠. 아까는 저도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미안했어요."


근무 4일 차, 선배들도 잘 가르쳐 주고 나 또한 열심히 배우며 적응하는 중이다.
경기도가 고향인 나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아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배들의 목소리는 따다다 커지고 내 귀는 두들겨 맞는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것 좀 가르쳐 주세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을 머리에 각인시키고 생글생글 웃으며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몸은 힘들고 고되지만 마음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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