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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심을 준비

by 작은거인





밤사이 내린 비는 백작약 위에 방울방울로 영롱하게 모여 있다.

웃을까? 말까? 하는 하얀 꽃봉오리 위에 초록인 듯 연두인 듯 한 잎사귀에도 투명한 빛을 내며 모여 있다.

해가 뜨면 사라질 물방울들을 휴대폰에 담는다.
사진을 찍는데 남편은 더워지기 전에 밭에 거름을 뿌리고 흙을 뒤집어야 한다며 서두른다.

연장을 챙겨서 밭으로 가니 냉이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뽑아야 하는데 씨앗이 여물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게으름으로 인한 방치였기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다음 주에는 모종을 사다 심어야 하는데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장할 때 어리다고 버려둔 배추에 꽃이 피었다. 무당벌레가 예쁘게 핀 꽃을 그대로 놔두라는 듯, 꽃을 꼭 지키고야 말겠다는 듯이 도망도 가지 않고 붙어 있다.
"얘야!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단다."
나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뽑고 그 옆에 무꽃도 뽑아 닭장에 던졌다.


남편은 거름을 내고 삽으로 흙을 뒤집는다.
나는 쇠스랑으로 흙을 모아 두덕을 만든다.
비닐을 씌워야 하는데 비에 젖은 흙이 질척거려 다음에 하기로 했다.






모종 심을 밭 두덕 만드는 일을 끝낸 남편은 뒷산에서 활짝 핀 두릅을 따왔다.

나는 연한 잎만 떼어내어 취나물과 함께 데쳤다. 어제만 해도 미처 피지 않았던 오가피 순이 밤사이 내린 비를 먹고 훌쩍 자랐다. 오가피순 끊어 흐르는 물에 샤워를 시켜 마당에 점심상을 차렸다.
안개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마당에
삼겹살 굽는 냄새가 퍼져 나간다.
땀 흘린 뒤에 먹는 산나물 쌈에 얹은 삼겹살 한 점과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세상이 다 내 것 인양 행복하다.
삼겹살을 안주로 기분 좋게 취해 소화도 시킬 겸 우산을 쓰고 는개비(안개비 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 보다 가는 비) 내리는 숲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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