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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이 어깨 위에 머문다.

by 작은거인



품 안에 자식을 떠나보내려면 피할 수 없는 상견례라는 만남이 있다.

며느리가 될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산청에서 서울로 향했다.
도시로 가는 내내 자주 신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구두는 발을 옥죄었다.
가도가도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길은 석 달 열흘 변비에 걸려 있는 것처럼 꽉 막혔다.
발을 옥죄며 가슴까지 답답하게 만드는 구두를 벗고 맨발로 약속장소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엉긍엉금 기다시피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 숲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필이면 만남의 장소가 서울 한복판이라니 근교로 나가 한가한 장소를 선택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먼저 도착하고 잠시 후. 사돈의 인연이 될 가족이 도착했다.

어색한 분위기는 술잔으로 대신하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불편할 것 같았던 만남의 자리는 예상외로 부드럽고 훈훈했다.

이튿날,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고향에 모신 부모님 산소로 향했다.

"엄마, 아버지! 당신들의 외손주가 결혼을 한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꾸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부모님 산소에 절을 하고 술 한 잔 부어드렸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과 느리게 느리게 마을을 걸었다.


밤나무집의 밤나무는 더 울창하게 자랐고 초가지붕이었던 집은 기와지붕으로 바뀐 채 그대로였다. 마당은 평평해서 깔끔하게 다져진 황토 마당이 참 많이 부러워했는데 밭으로 변해 있었다.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우리 집 마당은 평평하지 않아 비만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 잔돌만 남아 있기 일쑤였는데 평평하게 다져져 있다.


우리가 친구집을 드나들며 뛰어놀던 길에는 땅 주인이 내 땅이라는 표시를 해 놓고 차가 지나다닐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열 식구가 복작거리며 살던 우리 집은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들어서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집 아래 논은 마당이 되었고 집 뒤의 길을 따라 학교로 가던 길은 트럭이 막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마을은 두 동강이 났다.

삭막해진 마을을 걷는데 가슴에서 서걱거리는 휑한 바람이 지나간다.

이틀간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큰 아들은 집으로 작은아들은 김포공항에 내려주고 주고 나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다시 고속도로위에 섰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며늘아기야!
어색하지만 호칭을 며늘아기야!라고 불러본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어른들 도움 없이 준비하며 큰일 치르느라 고생했다.
모쪼록 남은 일정도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무리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거라.
야무지고 똑똑해서 잘할 거라 믿는다.
우리 가족이 되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서로 사랑하며 배려하며 좋은 사이로 거듭나는 인연을 만들어 가자꾸나.


남편에게 읽어 주는데 남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는 "아들바보야! 그래서 아들 장가는 어떻게 보내려고 하냐!"며 핀잔을 준다.

남편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그러게." 하며 껄껄껄 웃는다.

나는 남편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산청에 내 집을 향해 달리는데 저녁노을이 토닥토닥 어깨 위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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