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이다. 초록이 산 꼭대기로 부지런히 올라간다. 삼신봉에 후딱 올라서 초록을 마중하고 싶지만 비가 내려 포기했다.
삼신봉행을 포기하고 작업실로 들어가 주문받은 찻잔 받침을 만들기 위해서다.
오래전에 받았지만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통 손을 못 대고 있었다. 시간도 없지만 피곤하고 귀찮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하기 싫은 일을 겨우겨우 하고 있는데 배가 고프다. 일의 진척이 없으니 염불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꼴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창 너머로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왜 밥보다 지짐이가 생각나는 걸까.
어린 시절 마루에 앉아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는 봉당에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불을 지펴 지짐이를 구웠다. 아버지는 노란 주전자에서 누런 막걸리를 대접에 한가득 부어 벌컥벌컥 마시고 손으로 지짐이를 주욱 찢어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텃밭에 부추 자르고 파드득 나물을 베었다.
오가피순을 따고 두릅을 데쳐 쫑쫑 썰어 반죽을 했다.
마당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지짐이를 굽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진다.
비! 너 때문에, 나는 맑은 이슬을 마신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