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만들어 준 파스타
“저녁엔 뭐 해 먹지?”
토요일 점심을 먹으며 두 남자에게 물었다. 아들은 입안에 밥을 가득 넣은 채 내 말을 건성으로 받았다.
“아무거나, 있는 거 대충 먹어.”
그 ‘아무거나’라는 말. ‘차리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지’라는 말.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하지만 그 아무거나를 위해 나는 냉장고를 뒤지고 텃밭으로 나간다. 식구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아내이자 엄마의 일상이다.
아들의 무심한 대답에 문득 그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아무거나가 젤 힘든 거야. 오늘 저녁은 네가 좀 해볼래?”
농담처럼 던진 말에 아들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싫어! 엄마가 해.”
그런 아들에게 나는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파스타가 먹고 싶은데, 엄마는 만들 줄 모르니 네가 좀 만들어줘.”
“유튜브 보고 하면 되지.” 무심히 받아치는 아들의 말투가 얄밉다.
“엄마는 보고 또 봐도 모르겠더라.”
“진짜 먹고 싶어?” 아들이 웃으며 묻는다.
“웅!” 내 대답에 장을 보러 나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 뒤로 오후의 햇살이 마당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잠시 후, 아들은 시골 마트라 재료가 제대로 없다고 구시렁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있는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먹자.”하고 재료를 손질한다.
‘타닥, 타닥, 타다닥’ 아들의 도마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아들이 어렸을 때 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면 “엄마 도마소리가 재미있다”며 곁을 맴돌곤 했다.
나 역시 어릴 적, 부엌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도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부엌에서 마당을 지나 방 안으로 스며들던 달큼한 된장국 냄새가 기억 속에 그대로 있다.
올리브유에 마늘, 조개와 새우를 볶는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운다.
아들은 봉골레 파스타와 크림 파스타를 큰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세 식구는 각자의 접시에 덜어 먹으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처음 맛본 파스타의 맛은 깊지 않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후식을 먹자며 포미콘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달콤함 속에서 오래된 그리움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여름 흙길 위에 오후의 햇살이 부서지던 날,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내게 술에 취한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친구들 앞에서 그 모습이 창피한 나는 모른 척 외면했다. 그런 내 손에 포미콘 한 개를 쥐여주고 휘적휘적 멀어졌다.
그 모습이 싫어 포미콘이 녹아 손등을 타고 흘러내릴 때까지 먹지 않았다.
비틀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슬그머니 창밖을 본다.
그날, 부끄러움에 손등을 타고 녹아내린 포미콘 속에 딸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리움이 천천히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