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원사를 시작하면서
‘생활지원사’라는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는 첫날의 날씨는 매서웠다. 코끝을 스치는 찬 공기에 설렘보다는 떨림이, 기대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센터에서 교육을 마치고 담당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시간 내내 마음속으로 ‘나는 잘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들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처음 방문한 집 마당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어르신이 나오셨다. 오늘부터 어르신을 모시게 된 생활지원사라고 인사를 건네자, 어르신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집 안으로 이끄셨다.
거실 바닥이 차가운 냉골이라며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어르신은 “추우니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오라.”며 자리를 내주셨다.
“집이 어디라요?”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대뜸 사는 곳부터 물으셨다. “저 아래 호수 위에 있는 산 중턱에 삽니다”라는 대답에 어르신은 “아, 거기! ‘사노라면’에 나왔던 그 집 아이가?” 하며 반가워하셨다.
나조차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일을 기억해 주시는 어르신 덕분에 어색했던 공기는 금세 친숙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어르신의 얼굴에는 이내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혼자 먼 산만 바라보며 사느라 가슴이 답답하다는 어르신은 혼잣말을 하듯 옛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자식들 뒷바라지 끝내고 부부가 오순도순 살자며 들어온 시골살이, 하지만 남편은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둘이 갔던 그 길을 혼자 돌아오던 그날은 머나먼 귀향을 떠나는 것처럼 서글퍼 펑펑 울었다는 말씀에 얼마나 두렵고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에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젊을 때 운전이라도 배워둘걸, 남편이 이리 먼저 갈 줄 알았나.” 하시며 한숨을 깊게 내셨다.
방 안을 둘러보니 침대 머리맡에 시집 몇 권이 쌓여 있었다. 적적한 시간마다 시를 읽으신단다. 산골이라 책 사러 나가기도 어려워 버려진 책을 주워 읽는다는 말씀에 마음이 아릿했다. 누군가에겐 버려진 종이 뭉치였을 책들이 어르신에겐 유일한 말동무였으리라. 나는 다음 방문 때는 ‘새 책을 가지고 올게요.’ 하며 집을 나섰다.
이어 도착한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한 어르신이 내 얼굴을 빤히 보시더니 “어찌 이리 곱노? 아가씨라 해도 믿겠네” 하며 덕담을 건네셨다. 쑥스러운 마음에 “어머님이 더 고우세요. 이 풍성한 머리숱 좀 보세요!”라고 하니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새댁 때 이 긴 머리를 댕강 잘라 팔아서 쐬양푼이랑 바꿨다 아이가.”
그 말씀 끝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 모습이 생각났다.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쪽을 지시던 할머니는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까지 모아 신문지에 싸두었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면 머리카락을 들고나가 빨랫비누와 바꿔오셨다.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던 어렵던 그 시절 어머니들의 삶의 방식이었으리라.
마을 한편에서는 구부정한 허리로 쭈그리고 앉아 곶감을 매만지는 손길들이 분주했다. 때깔이 좋고 이쁘게 생긴 곶감을 골라서 내 손에 쥐여주시던 투박한 정(情). 귀가 어두운 어르신과 소통하기 위해 내 목소리가 천왕봉을 넘을 만큼 커져야 했던 순간들까지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낯가림이 심해 두려움과 걱정으로 시작한 첫날이었지만 어르신들은 따뜻하게 안아주니 부드러운 햇살을 닮은 온기로 내게 스며들었다. 차가운 바람을 견디며 마당에서 쫀득하게 익어가는 달콤한 곶감처럼, 우리의 인연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고 진하게 익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