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침입을 막던 날에
어렸을 때, 우리 집 천장은 늘 축 처져 있었다. 밤이 되면 그 위에서 ‘바스락, 다다다닥’ 가을 운동회라도 열린 듯한 소리가 났다.
잠에서 깬 나는 서생원이 몇 마리나 뛰는 걸까?’ 이불 위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올리고 조용히 귀 기울였다.
다락에는 칠흑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가끔 어두운 구멍에 눈을 대어 보곤 했는데 그 구멍은 공포를 여는 모험의 문이라고 믿었다.
천장과 우리의 경계는 신문지와 도배지 몇 장이 전부였다. 쥐들은 천장 위에서 살았고, 우리는 그 아래에서 살았다. 그렇게 한집에 사는 우리는 식구 아닌 식구처럼 묘하게 엮여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집은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 집의 천장은 반듯하고 단단했다. 어둠이 깊은 밤이 되어도 고요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요 속에 잊고 있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귀 끝에 스치는 아주 미세한 바스락 거림, 마치 기억 속 먼지들이 뒤척이는 소리 같았다. 에어컨도,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도 아닌 익숙한 소리 ‘바스락, 사각사각.’ 짧고 분명한 소리에 숨을 깊게 멈추었다.
그 순간, 오래된 시간의 문이 살짝 열렸다. 낡은 집의 천장, 세계지도를 닮은 얼룩덜룩한 무늬, 그 위에서 뛰놀던 서생원들, 그리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엄마가 빗자루 끝으로 천장을 두드리던 모습까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숨소리, 오래된 집이 내게 남긴 마지막 인사 같았다.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오래전에 사라진 소리들이 세월을 돌아 천천히 내 곁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더 이상 서생원의 운동회가 아닌 쫓아내야 할 침입자였다.
천장을 향해 치켜들었던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낡은 빗자루 대신 파리채를 거꾸로 들고 천장을 톡톡 두드렸다.
소란스럽던 소리는 이내 잠잠해졌다. 서생원과 나의 세상은 더 이상 신문지와 도배지 몇 장으로 나뉘지 않는다. 단단한 합판과 편백나무 루바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벽을 갉아먹는 소리는 낭만이 아니라 결함이었고, 추억이 아니라 위생의 문제였다.
다시 귀를 기울이니 소리는 거실과 주방 벽 사이의 아주 좁은 틈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손전등을 비추었다. 빛이 닿은 곳에는 서생원도 세계지도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가구 뒤편으로 빨려 들어간 낡은 사진 한 장처럼, 기억의 소리가 벽면을 긁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흑백사진 속, 낡은 집의 천장처럼, 주름이 가득한 젊은 날의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침입자는 쥐가 아니라, 내 기억을 깨운 흐린 그리움이었구나.”
내 평온한 고요를 깨고 들어온 진짜 침입자는 빈틈없이 단단해졌다고 믿었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그리움이었다.
쫓아내려 했던 그 소리를 가만히 집어 들었다. 먼지를 털어내니 바스락거리던 소리는 잦아들고 묵직한 침묵이 집안을 채웠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워 다시 천장을 보았다. 쥐들의 운동회가 끝난 자리엔 오래전 잊힌 기억들이 하나,둘 신발 끈을 묶기 시작했다.
'달그락, 다다다닥, ' 그들의 작은 운동회가 내 마음속에서 다시 열린 듯했다.
이제 나는 이불을 이마까지 올리지 않는다. 대신 어둠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다. 완벽히 밀폐된 줄 알았던 내 삶에 가끔은 이런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