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찾겠다 꾀꼬리
생활 지원사로 일을 시작한 지 6일 차다. 먼저 아흔이 넘은 어르신 댁을 방문했다. 자물쇠가 현관 문고리에 걸려 있는 것으로 집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창 계란을 삶고 계셨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냄비에 계란 세 알을 더 넣으신다. 배가 불러 못 먹는다고 손사래를 쳐도 자꾸만 먹으라 권하시는 통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가방에 챙겨 넣었다.
어르신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보일러도 틀지 않고 한파를 견디고 계셨다. 온기라고는 침대 위 전기장판뿐이다. 이불속에 발을 넣고 말벗을 해드리는데, 말을 내뱉을 때마다 입김이 나오고 콧등이 시리다.
한 시간여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 어르신 댁으로 향했으나 집이 비어 있다. 어디 계신지 전화를 드리니 목욕하러 면 소재지에 나가셨단다. 목욕 후 곶감 축제 구경까지 하고 오실 모양이다. 그렇게 나의 근무시간 두 시간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
사라진 시간을 잡으러 어르신들을 찾아 나섰다. 목욕탕 앞에서 나오시기를 기다린 지 한 시간. 잠깐 다른 일을 보는 사이 그만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어디로 가셨을까? 의지할 것이라고는 손에 쥔 휴대폰뿐이다. 다행히 연락이 닿은 한 분은 어지러움 때문에 축제장에 가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에 계시다고 했다. 정류장에 계신 어르신을 먼저 차에 태우고, 나머지 한 분을 찾으러 축제장으로 달렸다.
내가 사는 산청은 명품곶감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곶감을 홍보하기 위해 축제가 한창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하니 이번에는 받지 않으신다. 결국 축제장 인파 속에서 어르신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들여다보며 구석구석 누볐다. 두 바퀴를 돌고 반 바퀴를 더 돌았을 때쯤, 어르신이 먼저 나를 알아보셨다. 그때가 오후 1시경. 마을로 가는 버스는 3시 10분에나 있다. 날씨는 춥고, 연로하신 분들을 축제장에 두 시간이나 더 계시게 할 수는 없었다.
"목욕하고 나서 찬바람 쐬면 감기 듭니다. 집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이제 고마 가입시더."
구경하다 버스 타고 가면 된다며 극구 사양하시는 어르신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차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내 할머니처럼 기역 자로 굽은 허리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신다. 미안하다며 발걸음을 서두르시지만 제자리에서 '고추 먹고 맴맴' 도는 듯 속도가 나질 않는다.
겨우겨우 차가 있는 곳까지 모셔왔지만, 문을 열어드린다고 상황이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한파에 굳은 몸으로 발 한쪽을 차 안으로 들여놓는 것조차 어르신들에게는 큰 숙제 같았다. 한 손으로는 차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팔을 꼭 잡은 채 아주 천천히 한 뼘씩 몸을 옮기셨다.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시트 깊숙이 엉덩이를 붙이기까지, 몇 번이나 숨을 고르시는 그 느릿한 움직임을 지켜보며 나는 가만히 어르신의 등을 받쳐드렸다.
집 앞까지 무사히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며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거실 문을 열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꾀꼬리를 찾아 헤맸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아 헛손질만 하다 깼다. 일정을 정리하려고 가방을 열어보니, 아침에 어르신이 넣어주신 계란 세 알이 여전히 온기를 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