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어둠은 도시보다 일찍, 그리고 더 깊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날 우리 집 창가만큼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환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남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도시에 사는 큰아들 부부가 내려오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평소 조용하던 집은 아침부터 기분 좋은 설렘으로 들썩였다.
그 남자는 아들 부부를 맞을 생각에 주방 개수대에 서서 석화를 손질했다. 멀리서 오는 아들 부부에게 가장 싱싱한 바다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며 껍질 하나하나를 정성껏 닦아내고 씻었다. 식탁에서는 둘째가 형을 기다리며 석화 위에 얹을 양념장을 만들고 있었다. 형이 좋아하는 맛을 떠올리며 마늘을 다지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는 작은아들의 모습에는 형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두 남자의 정성이 모여 고요한 산속 집에 밝힌 촛불은 어둠을 뚫고 대문 밖까지 흘러넘쳤다. 드디어 도착한 아들 부부의 환한 웃음과 함께 가족들이 나지막이 불러주는 생일 노래는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산자락으로 기분 좋게 번져 나갔다.
창밖으로는 눈꽃을 피운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집 안은 반가운 재회와 따뜻한 대화로 가득 찼다. 삼천포에 가서 떠온 싱싱한 회와 정성껏 손질한 석화가 상 위 가득 차려졌다. 소주잔을 ‘쨍그랑’ 부딪치며 축제의 막이 올랐고, 바다 향 가득한 석화 위로 와인잔이 ‘치잉’ 하며 화답했다. 맥주잔까지 겅중거리며 흥을 더하니 겨울 산속의 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족들의 얼굴에 번지는 행복한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이 따뜻한 불빛이 우리 가족의 가슴속에 영원히 바래지 않을 추억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생일날 밤의 뜨거웠던 축제는 다음 날 아침, 인근 곶감 축제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축제장의 북적이는 활기와 정겨운 소음 속에서 마주 앉아 먹는 떡국 한 그릇은 어제 마신 술의 기분 좋은 숙취를 말끔히 풀어주었다. 무엇보다 그릇 속에 가득한 쫄깃한 떡은 한 살을 더 먹는 만큼의 정으로 돈독해졌다. 한 수저씩 나눌 때마다 가족애는 더 찰지게 감겼고, 잘 익은 곶감처럼 달콤한 행복이 입안 가득 퍼졌다.
식사 후 경호강이 굽이쳐 내려다보이는 산속 카페를 찾았다. 갓 구운 달콤한 빵 한 조각에 커피 향이 스며드는 평온한 시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설에 다시 올게요"라며 환하게 웃으며 떠나는 아들 부부를 배웅하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멀어지는 차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를 품으며 예쁘게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소리 없는 기도를 올렸다.
"매일이 오늘만 같기를, 우리 가족의 시간이 늘 이토록 향기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