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자연의 순리다. 젊을 땐 ‘나도 언젠가 늙겠지’ 하고 가볍게 말했지만, 막상 나이 듦의 세상에 들어오니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둔해진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사소한 일 하나에도 숨이 차다. 생각은 느리고 기억이 사라질 때마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실감한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하루의 일과를 핸드폰에 남기는 일을 즐긴다. 그 작은 액정 속에는 내 삶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물론 작은 화면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돋보기를 쓰고 눈을 찡그리며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눈보다 마음이 먼저 피곤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배우고 익히며 새로운 세상을 보려고 용을 쓴다.
아들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어느 날, 택배 상자 하나를 보냈다. 그 안에는 얇은 전선 한 가닥이 들어 있었다. 나는 창고에 처박혀 있던 작은 텔레비전과 노트북에 선과 선을 연결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손바닥만 한 노트북 화면 속 세상이 거실 가득 펼쳐진 것이다.
작은 글자가 큼직하게 살아나고, 사진 속 풍경이 생생하게 빛났다. 돋보기를 써가며 힘겹게 들여다보던 세상이 전선 하나로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시골에서의 삶은 자칫 세상과 단절된 초라한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느다란 전선 한 가닥과 보이지 않는 무선 와이파이가 나를 저 화려한 도시의 세상과 쉼 없이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해간다. 뮤지컬이나 음악회를 알리는 일은 거리에 포스터 대신 휴대폰이 알려주고,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소식은 메시지 창에서 오간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낯설고 두려웠지만,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니 기술은 결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나 같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손쉽게 건네주는 따뜻한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 전선 한 가닥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시대와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이제 나는 두려움 대신 호기심으로 세상을 배운다.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려도, 실수로 화면이 사라져도 괜찮다. 예전 같으면 ‘내 나이에 뭘 배우나’ 하며 손사래를 쳤겠지만 지금은 안다. 삶은 배우려는 마음이 있는 한 언제나 새롭게 열린다는 것을. 나이 듦은 세월이 주는 숙제이자 선물이다. 몸은 느려지고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대신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시선은 깊어진다. 젊은 시절엔 ‘끝’처럼 보였던 일들이 이제는 또 다른 ‘시작’ 일뿐임을 알게 된다. 조금 늦어도, 서툴러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얇은 전선 한 가닥이 내 삶에 가져온 것은 단지 화면의 확장이 아니다. 그 속에는 세상의 변화에 다가가고 싶은 나의 열망이 담겨 있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의 다정함이 흐르고 있다. 오늘도 커다란 화면 속에 글을 띄워놓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전선 한 가닥이 내게 내민 신세계는 결국 ‘새로움’보다 ‘이어짐’의 세계였다. 세대를 잇고, 사람을 잇고, 시간을 잇는 그 연결의 끝에서 나는 또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