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원사의 일기
생활지원사로 오늘 만나야 할 어르신은 네 분이었다. 그러나 두 집은 비어 있었다. 전화를 드리니 추위를 피해 자녀분들 댁에 가 계신다고 했다. 나머지 두 어르신 댁에서 긴 시간을 보냈지만, 하루의 리듬은 어느새 어긋나 있었다.
남겨진 공백을 채우듯, 나는 마을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대마을에서 중산리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고 했다.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 초입은 완만했으나, 곧 숨이 가빠질 만큼 가파른 비탈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그 비탈에는 삶이 있었다. 돌담을 두르고 철근을 세운 집들이 산자락에 끝까지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비탈지고 험한 곳에서도 군데군데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즈음 나는 멈춰 섰다. 뒤돌아보니 발밑으로 내대마을이, 그 너머로는 생수공장의 푸른 지붕이 보였다. 멀리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청학동으로 향한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빛을 쏟고 있었다. 가파른 길이든, 바쁜 하루든 아랑곳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켜내며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르겠지.
숲으로 이어진 오솔길에 들어서자 바람이 뺨을 스친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부서져 등 뒤로 쏟아진다. 따스한 빛이 물결처럼 마음속 빈틈을 채워 주었다.
걷기에 좋은 날씨, 숨쉬기 좋은 공기, 그리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걷기 시작했지만, 걷는 동안 오히려 내가 비워지고 있었다. 발걸음은 느려졌고, 생각은 단순해졌다.
햇살과 바람, 나무 향기로 하루의 여백이 천천히 채워졌다. 오늘의 빈 시간을 자연의 품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으로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