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원의 정(情)

생활지원사의 일기

by 작은거인



​마을 어르신들은 부녀회장이 재료를 사다 놓으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드시곤 한다. 이번 메뉴는 수육이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 아침, 칼바람을 뚫고 회관에 도착하니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모여들었다. 목도리를 꽁꽁 싸매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들어오는 굽은 등은, 추위 탓인지 평소보다 더 작고 동그랗게 보였다.

​전기장판 위 따뜻한 이불속에 옹기종기 발을 넣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식사 준비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나마 허리가 덜 굽으신 '막내 서열'의 어르신 두 분이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따라 들어가 쌀을 씻겠다고 나섰다. 극구 말리시는 걸 "다른 건 몰라도 쌀은 씻을 줄 안다"며 쌀이 담긴 바가지를 기어이 건네받았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는 옆에 계신 어르신께 여쭈었다.
“어머니, 밥물은 얼마나 잡을까요?”
​그러자 어르신은 솥에 부은 쌀을 보시더니 다시 바가지에 쏟으라고 하셨다. '그냥 물을 부으면 될 텐데 왜 그러시지?' 궁금했지만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쌀을 다시 바가지에 옮겼다. 어르신은 바가지에 담긴 쌀의 높이를 눈으로 쓱 가늠하시더니 다시 솥에 부으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물도 딱 그 쌀 높이만큼만 바가지에 부어 넣으면 양이 딱 맞는 거라.”
​살면서 터득한 연륜의 비법에 “와우! 이런 방법이 있군요? 오늘도 귀한 거 하나 배웠네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르신은 기분 좋은 듯 환하게 웃으며 대꾸하셨다.
​“그렇지, 좋은 거 가르쳐 줬으니까 오백 원 내놔라!”

​시간이 흐를수록 구수한 수육 냄새가 진하게 퍼지며 회관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동료들과의 점심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후 교육 일정까지 있어 서둘러 옷을 챙겨 입자, 어르신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 소매를 붙잡으셨다.
​“이 맛있는 걸 두고 어딜 가노?”
“읍내에서 동료들과 점심 먹고 교육받으러 가야 해요.”
“아이고, 그래도 딱 한 쌈이라도 좋으니 먹고 가라.”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요. 다음에 더 맛있는 거 해주세요!”
​죄송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며 회관 문을 나섰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으로 나서는 내 등 뒤로 “아이고, 먹고 가면 참 좋을낀데...” 하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연신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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