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원사의 일기
“우리 물 안 마셨어?”
남편의 그 한마디가 심장에 와서 ‘쿵’ 하고 박혔다. 늘 흘려들었던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우리'가 그토록 낯선 두근거림으로 가슴을 뛰게 했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방황하듯 어지러워지며 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주방으로 들어가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다. 600ml 컵에 뜨거운 물 절반, 찬물 절반을 섞은 미온수는 부부가 함께 마시는 첫 물은 하루를 여는 루틴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리듬이 끊겼다.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일도 매일의 일상이기에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니, 포트의 스위치를 눌러놓고 까맣게 잊은 것이다.
예전에 사고로 겪었던 세 번의 전신마취 후유증일까, 아니면 늘어가는 나이만큼 기억력도 헐거워진 탓일까. 한 곳에 마음을 쏟으면 다른 하나는 안개처럼 사라지곤 한다.
뒤늦게 주방으로 들어가 다시 스위치를 누르는 내 뒤로 남편이 다가와 던진 말이 가슴을 묘하게 파고들었다.
“우리, 아까 물 안 마셨어?”
“안 마셨지. 아까 일도 기억 안 나니 어쩌면 좋노?”
농담처럼 받아친 그 말끝에 ‘우리’라는 단어가 명치끝에 걸려 자꾸만 심장을 두드렸다. 생각해 보면 그 단어는 결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었다. 생활지원사로 일하며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퀴퀴한 냄새와 숨죽인 정적이 먼저 반기는 그곳.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여 “어머니”라 부르며 방에 들어서면 어르신들은 슬라이드 영상처럼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다.
“왔노?” 하며 건네는 희미한 미소 뒤에 숨겨진 흔적들,,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고, 혼자 밥을 먹는 그분들의 삶 속에 ‘우리’라는 단어는 오래전에 퇴색된 빛바랜 사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남편이 던진 그 짧은 문장 속의 ‘우리’가 나를 이토록 흔들어 놓은 것은. 그것은 단순히 둘을 묶는 대명사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챙기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언어였다.
다시 포트에서 김이 오르고 뽀글뽀글 물이 끓었다. 나는 정성껏 두 개의 컵에 물을 따랐다.
한 잔은 남편에게, 한 잔은 나에게. 그 작은 습관 속에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었다.
“우리 가족, 우리 식구. 우리 오늘 뭐 할까?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입 밖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내뱉는 ‘우리’라는 말은 할수록 달콤하고 포근했다.
생활지원사라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우리’가 주는 그 따뜻한 감정, 함께 살아있다는 가장 다정한 말이며 시린 외로움을 녹이는 온기라는 것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