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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Sep 01. 2023

슈퍼 블루문이 숨는 바람에 나는 술래가 되었다.

슈퍼 블루문을 보며  걷는다.






 슈퍼 블루문이 뜬다는데 잔뜩 흐린 하늘엔 북극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린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햇살의 영양을 듬뿍 받아야 곡식들이 익어갈 텐데, 자주 내리는 비가 야속한 요즘이다.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매일 아침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비가 온다고 포기할 수 없어 우산을 쓰고 걸었다. 굵은 빗줄기가 어찌나 세게 쏟아지는지 우산 속을 파고들어 옷을 적시는 통에 만 보를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다. 다행히 오후가 되면서 비는 그쳤다.

 저녁을 먹고 모자란 만 보를 채우려고 밖으로 나갔다. 밤 운동을 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가면 먼저 하늘을 올려보는 버릇이 있다. 별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서 말이다. 잔뜩 흐린 날씨는 하늘에 시커먼 구름을 가득 채웠다. 블루문 보기를 포기하고 맨발로 부지런히 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발바닥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어찌나 활활 타오르는지 발바닥이 금방이라도 익어 버릴 것 같았다. 집 앞에는 비 올 때만 생기는 실개천 같은 도랑이 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곳에서 발바닥을 식히고 다시 걸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읽어주는 책 '파친코'를 듣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은 탓인가? 한쪽 이어폰이 빠지려고 들썩거렸다. 다시 귀에 꽂으려고 멈춘 순간, 말 그대로 쟁반같이 둥근달이 산 능선에서 떠 오르고 있었다. 오늘 보지 못하면 14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는 슈퍼 블루문이었다. 나무 뒤에서 수줍은 듯 살짝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원하지 않는 술래가 되었다.  






   손전등이 귀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저녁을 먹은 후, 할머니는 우리 자매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큰할머니댁으로 밤마실을 가곤 했다. 나는 자는 척하다가 할머니가 대문을 나서는 것을 확인하고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분칠 한 엄마의 얼굴처럼 하얗고 둥근달이 좁디좁은 시골길을 환하게 밝혀 손전등 없이도 훤히 다 보였다. 큰할머니댁으로 가려면 오래된 기와집을 지나가야 하는데 어두운 밤에 그 집을 지나가면 왠지 기분이 오싹해지곤 했다. 동네 사람들도 지나기를 꺼리는 그 집을 지나가기 전에 따라가려고 잰 발걸음으로 할머니 뒤에 딱 달라붙었다. 그렇게 뒤를 따르는 것은 큰할머니댁엔 마을에 몇 대밖에 없는 텔레비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들 집에 가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눈치를 보며 봐야 하지만 할머니를 따라가면 옆에 착 달라붙어서 편하게 볼 수 있다.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이 들면 할머니가 집에 가자고 깨웠다. 졸린 눈으로 비틀비틀 할머니 뒤를 따라 집으로 가다 보면 내 그림자가 할머니 등에 붙어 있었다. 깨지 않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와 거리가 멀어지면 내 그림자는 땅 위에 살포시 내려와 걸었다. 달을 보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은 늘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왔다.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달이 자꾸만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아!"

"달도 자기 집에 가는 거야." 할머니가 무심하게 던진 그 말에 어렸던 나는 정말 달도 집이 있는 줄 알았다.


     




목표한 걸음 수는 채웠는데 달은 구름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당에서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았다. 하늘을 올려보며 구름 속에 숨은 달이 나오길 기다리다 지쳐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물로 땀을 씻어내고 휴대폰을 들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긴 시간 기다림 끝에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놈! 찾았다. 드디어 술래에서 벗어났다. 달이 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릴 것 같아서 서둘러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달이 멀리 있으니 빛이 번지면서 둥근 모습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담고 싶어 줌으로 당겼다. 순간을 놓칠세라 액정에 표시된 하얀 동그라미를 연신 눌러댔다. 휴대폰은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네모 속에 부지런히 달을 따 담았다. 야금야금 꺼내 먹으려고 내 마음속에도 터지지 않을 만큼 빵빵하게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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