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언제나 그랬듯 설거지 끝내고 물을 끓여 무 차를 우렸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 옆에 놓는 것까지가 늘 반복되는 일상이다. 차가 조금 식기를 기다렸다 마시고 밤운동 하러 나갈 생각이다. 그런데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어진 내 입이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서 여수까지 얼마나 걸릴까?" 남편은 시선을 텔레비전에 고정한 체 무심한 듯 대답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지 않을까? “
시간을 보니 8시를 조금 넘기고 있는 시간이다. 남편에게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우리 여수 밤바다 보러 갈래?"
"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어?"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말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왔다.
"그래. 그럼 가자."
"잠은?"
"차에서 자면 되지."
"그래. 이불 챙기자."
여수로 향하는 길에서 달을 만났다. 산청에 떠 있는 달과 같은데 여수의 달은 우리 집 마당에서 보는 것보다 낭만스러워 보이는 걸까? 여행이 가져온 선물이리라.
여수의 낭만 포차 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리로 나왔다. 낭만 포차 거리는 배회하는 사람들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거리를 걷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음악이 쿵쾅거리는 여수 밤거리는 산골에서 조용히 지내던 나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남편과 사진도 찍으며 시간 가는 줄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거리를 싸 돌아다녔다.
낭만포차 거리엔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낭만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우리도 연애하던 시절 헤어지기 싫어 밤거리를 배회하고 다니던 그때를 떠올리며 한참 동안 여수를 배회했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다리도 뻐근해지고 발바닥도 아프고 출출하기도 해서 편의점으로 갔다. 맥주와 떡볶이 그리고 마른안주를 샀다. 떡볶이는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서 차를 타고 ‘돌산해양낚시공원’으로 갔다.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뒤에 의자를 접어 편편하게 만들었다.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을 꺼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건배를 외치며 캔 안에 가득 들어있는 낭만을 야금야금 꺼내 마셨다. ‘사는 게 별거더냐 이렇게 사는 게 행복이지’라며 누웠다.
시원한 바람 들어오라고 열어둔 차창 너머로 별들이 빙긋이 웃고 있다. 별들과 눈빛 교환의 즐거움도 잠시 모기떼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희생이 동반한다지만 모기떼들의 공격은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창문을 닫고 다시 자려니 이젠 두 사람의 열기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불편한 잠자리에서 깊은 잠을 잔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뜬눈으로 잠을 포기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 일어나니 여기저기 삐거덕거리 몸과 아침이 마주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바다, 군데군데 한가로이 떠 있는 배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또 어디로 갈까? 여행에 꼭 목적지가 필요한 걸까? 그냥 떠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달리다가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으면 들려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수립하고 경치 좋은 바닷가가 있으면 바닷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어도 좋으리라.
부릉부릉 자동차가 웃는 소리에 우리는 이렇게 외쳤다. 그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보자고. 추울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