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면 싸늘한 공기가 먼저 반긴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린다. 어느새 가을이 대문 앞까지 와 있다. 집안까지 차지한 가을 공기를 느끼며 삼신봉 오르는 길에 다래가 떨어졌을까? 궁금해졌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삼신봉에 오르면서 떨어진 다래를 주워 먹곤 했다. 후숙 과일인 다래가 나무에서 자연스레 농익으며 만들어 내는 맛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 말하고 싶다. 남편 출근하고 서둘러 달렸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삼신봉은 어둑어둑했다. 발목과 무릎을 돌려 긴장을 풀어 주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며 다래를 찾았지만 떨어져 있어야 할 곳은 나뭇잎만 듬성듬성 떨어져 있다.
물을 먹을 수 있게 바가지를 가져다 놓으면 없어지곤 해서 늘 아쉬웠다. 그런데 누군가가 스텐 국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 고마운 손길에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였다.
삼신봉 오르는 길에 있는 샘물의 맛은 참 독특하다.
물 맛을 보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물을 떠서 갈증부터 채웠다. 빈통으로 가져온 물통에 물을 채우고 다시 오른다.
거대한 바위와 바위 사이를 작은 돌로 채워진 그 위에 삼신봉 정상석이 있다. 어느 장인의 손길이 이렇게 정교하게 돌을 쌓았을까? 누구의 손길인지 늘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돌탑 위의 정상에 올라서서 지리산 종주능선을 바라보며 천왕봉을 조망했다. 휴대폰을 세워 놓고 혼자 셀카 놀이에 열중했다.
외삼신봉 봉우리는 시커먼 구름을 바치고 태양은 내리누르고 있으니 구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내 내가 있는 삼신봉까지 달려와 태양을 가리고 어둠을 만들었다. 땀에 젖은 내 몸은 태양이 사라지자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조금 더 놀고 싶었지만 비라도 오면 낭패다.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하산했다.
절반쯤 내려오니 산을 덮었던 안개는 사라지고 다시 해가 보였다.
떨어진 잎들을 주워 올라올 때 만난 샘물에 나뭇잎 배를 띄웠다.
고요한 숲 속엔 새소리 바람소리만 간혹 들려왔다. 가끔 다람쥐가 궁금한 듯 슬쩍 곁눈질하면서 지나칠 뿐 오롯이 혼자였다. 동심으로 돌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혼자 놀다 보니 엄마가 보고 싶은 아이처럼 이내 시들해졌다. 예쁜 아이들을 두고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휴대폰 속에 넣었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윈 하던 다래의 맛은 보지 못했지만 초록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과 하늘, 나무들 사이사이로 스치는 바람의 내음, 숲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