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거인 Nov 25. 2023

그 남자의 커피 이야기


   이 이야기는 50년도 더 지난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리산 깊은 골에서 시작하는 마야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계곡은 하늘 아래 첫 동네 중산리 마을을 지나고 여러 개의 마을을 지나 덕산이라 불리는 곳으로 흐른다. 왕등재 습지에서부터 흐르는 물도 대원사 계곡을 지나 덕산으로 흐른다. 그곳에서 만나 합쳐진 양단수를 마을 사람들은 덕천강이라 불렀다.



 덕산에서 나룻배를 타고 덕천강을 건너면 상지마을이 나온다. 상지마을에서 태어난 그 남자는 사형제 중 막내였다. 사형제의 키는 하늘과 맞닿았고 인물은 마을 처녀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형들은 돈을 벌겠다고 부산으로 떠나고 막내인 그 남자만 고향에 남아 과수원 농사를 짓고 있었다. 도시로 나갔던 삼 형제가 명절을 보내려고 고향으로 왔다. 형제 중에 제일 잘생긴 셋째 형이 아버지 앞에 앉았다.

 서울 가서 최무룡 같은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며 배우가 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 땅을 팔아달라고 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허황된 꿈을 꾼다며 일언지하 거절했다. 꿈을 잃은 셋째 형은 집을 나갔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던 형에게서 편지가 왔다. 원양 어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며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와 함께 봉지에 이상한 글씨가 적혀 있는 외국 과자들도 함께 보냈다. 과자 봉지들 속엔 한글로 ‘먹는 방법’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봉투가 하나 들어 있었다.      

   ”끓는 물에 타서 수저로 휘휘 저어 가루를 녹여 먹을 것,“     

 봉투를 열어보니 시커먼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다. 남자는 편지에 있는 내용대로

 일단은 가마솥에 물을 길어다 부었다.

 이단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삼단은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사단은 봉지 속에 있는 검은 가루를 통째로 가마솥에 쏟았다.

 오단은 밥주걱으로 가루를 휘휘 저어 가며 풀어 주었다.     

 가루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기는 바람을 타고 마을의 공터를 돌아다니다가 집집마다 파고들었다. 그 향기에 끌려 마을 사람들이 남자 집 마당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남자는 셋째 형이 외국에서 보내온 거라고 자랑하며 냉면 대접에 한 국자씩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대접을 받아 든 사람들은 사약처럼 생긴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 가며 맛을 보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이리 쓴 물을 우찌 먹노? 이걸 사람이 먹는단 말이가? 코쟁이들은 생긴 것도 희한하더만 참말 요상한걸 다 먹는데이."

 사람들은 대접에 들어 있던 시커먼 물을 쏟아 버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남자의 손에는 머그잔이 들려 있다. 머그잔 속 따뜻한 블랙커피는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세월이 익어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