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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26. 2023

드디어 남편은 내게 스며드는 중이다.






남편이 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 만난 40년 전 가을 어느 날인 그때부터 내게 스며들기 시작했으리라.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나의 양육방식을 존중해 주었다. 친정식구들과는 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시댁과 심각한 마찰이 생겼을 때도 내편이 되어 나를 보호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36년째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우리 부부는 수원에서 25년의 결혼생활을 하며  노후는 시골에서 살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귀촌 11년 차이니 그 꿈은 이루어진 셈이다.
 내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1998년도에 면허증을 땄지만 운전은 하지 않았다. 시골에 들어와 운전을 시작한 지 5년 차니 그 꿈도 이루어졌다.
 다음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 꿈은  희미하게 빛을 잃어 가는 중이지만 언젠가는 성냥을 힘차게 그으면 불이 붙듯이  활활 타오르며 빛을 낼 것이다.
 다음은 캠핑카를 장만해서 남편과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거였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남편  머릿속에 캠핑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었지만 번번이 튕겨 나왔다.
남편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예치골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그것이 캠핑이란다.
나는 예치골은 현실이고 캠핑카는 낭만이라며 포기하지 않고 남편의 뇌를 공격했다.
 




  여름밤이 깊어 가던 어느 날에  뜬금없이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자고 했더니 남편은 숙소도 정하지 않고 어떻게 가냐고 했다. 나는 대뜸 차에서 자면 되지라고 맞받았다. 그날밤 여수 밤바다 어느 해안가에서 차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36년 차 결혼 기념일엔  2박 3일 차박 여행을 하며 가을을 즐겼다.
 두 번의 차박을 경험한 남편은 우선으로 필요한 차박용 배터리부터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차박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하는 중이다.
 오늘도 남편은 내게 나는 남편에게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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