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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27. 2023

쟁반같이 둥근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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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11일간의 감 깎는 작업이 끝났다. 말랭이용 감은 가을 햇살을 받기 위해 마당에 널렸다. 곶감용 감은 숙성되기 위해 천장에  걸렸다. 감 덕장엔 감이 숙성되며 뿜어 내는 달근한 냄새가 가득 찼다.


  이제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끝난 셈이다. 곶감이 되기까지는 날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당분간 비가 오거나 따뜻한 날이 계속된다면 습을 먹은 감은 홍시가 되어 떨어진다.
천장에 걸린 감을 쳐다보며 날씨가 도와주기를 간절하게 기도 했다.
 


  하루종일 감꼭지에 작은 고리를 끼우는 작업을 수 천 번 반복하고 나면 손가락이 퉁퉁 붓는다. 감각이 사라지고 지문에 굳은살이 박인다.
 하나하나 내 손을 거쳐서 천장에 걸린 감을 바라보니 뿌듯함이 가득 차 올랐다.

  주인부부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받으며 감덕장을 떠났다. 집으로 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삼겹살과 캔맥주, 소주 한 병을 샀다.  퇴근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집에 가는 중이야. 일은 다 끝난 거야?"
 "다 끝나고 마트에 들렀지. 그동안 번 돈으로 오늘은 내가 삼겹살 쏠게! 맥주도 살까?"

"그려. 고생했네."
  



  삼겹살을 구워야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시원한 맥주에 소주 한 잔 섞어야지.  
짜릿한 목 넘김을 상상한다. 가슴에서 뻐근한 통증이  꿈틀거린다.
 흥얼흥얼 집으로 가는 길을 보름달이 환하게 밝히고 있다. 차 안으로 냉큼 들어온 달빛은 내 마음에도 들앉았다. 가슴은 쟁반같이 둥근달처럼 충만함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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